[저임금의 늪⑥] 38년간 합의는 단 8번…상처뿐인 최저임금 심의


노사 줄다리기 팽팽…매년 갈등에 파행 거듭
공정성·투명성 논란…"공익위원 책임성 강화"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계와 생활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기구다. 하지만 심의 과정에서 파행은 물론, 비공개 운영 방식으로 공정성 논란도 뒤따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23년 7월 노동자 위원들이 2024년 최저임금이 9860원으로 결정된 것에 반발해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퇴장하는 모습. /더팩트 DB

저임금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주 6일을 일해도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건강은 물론, 교육, 여행, 외식 등 대부분을 포기하지만, 저임금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은 우리 사회 깊게 뿌리 내린 구조적 문제로, 왜곡된 성장과 분배의 불균형을 드러낸다. 더욱이 최근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흐름은 단순노무직에 국한되지 않고 서비스, 플랫폼, 돌봄 등 분야까지 확산했다. <더팩트>는 6회에 걸쳐 대한민국 평균이 꿈일 뿐인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을 조명하고 구조적 원인과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더팩트ㅣ박준형·김영봉·이윤경·이다빈 기자]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계와 생활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기구다. 하지만 심의 과정에서 파행은 물론, 비공개 운영 방식으로 공정성 논란도 뒤따르고 있다. 올해도 지난달 31일부터 2027년도 최저임금 심의에 공식 돌입한 가운데 중동 전쟁과 유가 변동 등으로 난항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노사 간 중재 역할을 하는 공익위원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4일 노동계에 따르면 최임위는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으로, 노동자 위원과 사용자 위원, 공익위원 각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됐다. 매년 3월 말 심의 요청을 시작으로 전원회의와 전문위원회 논의와 노사 의견 청취 등의 과정을 거쳐 6~7월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을 의결한다. 이후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종 최저임금을 고시한다.

최임위가 출범한 1988년부터 2025년까지 총 38차례의 심의가 진행됐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 측과 동결을 요구하는 사용자 측 의견 충돌이 이어지면서 표결 없이 노·사·공 합의로 최저임금이 결정된 경우는 단 8차례뿐이었다.

최저임금제도 시행 이후 1989년과 1991년, 1993년, 1995년, 1999년 노사 간 합의를 통해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노사 입장 차가 커지며 전원회의 불참과 퇴장 등 파행이 반복됐고, 2007년과 2008년에 이어 2025년 17년 만에 다시 합의로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최근 10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은 2016년 8.1%(6030원), 2017년 7.3%(6470원), 2018년 16.4%(7530원), 2019년 10.9%(8350원) 등으로 큰 폭으로 올랐다. 이후부터는 2020년 2.9%(8590원), 2021년 1.5%(8720원), 2022년 5%(9160원), 2023년 5%(9620원), 2024년 2.5%(9860원), 2025년 1.7%(1만30원), 2026년 2.9%(1만320원) 수준으로 비교적 낮은 인상률에 머물렀다.

최저임금 인상률은 2016년 8.1%(6030원), 2017년 7.3%(6470원), 2018년 16.4%(7530원), 2019년 10.9%(8350원) 등으로 특히 2018년과 2019년 두 자릿수 인상률을 기록하며 큰 폭으로 올랐다.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노동자 측은 낮은 최저임금 인상률이 저임금을 고착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노총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지난 3년간 결정된 최저임금 인상률 평균치는 2.36%.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 평균인 2.66%보다 낮다. 물가를 웃돌지 못하는 최저임금 저율 인상으로 저임금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마이너스 상황으로 악화돼 더욱 절망적이라는 게 노동자 측 입장이다.

한국노총은 "지난 코로나19 시기 여러 국가들은 최저임금을 크게 올려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고 내수경기를 회복하는 등 저소득층을 보호했다"며 "한국은 임금 양극화와 소득 양극화, 자산 양극화라는 자본 우선 경제정책을 편중하고 있다. 최저임금의 소득 재분배 기능 정상 회복을 위해 큰 폭 인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사용자 측은 인건비 증가에 따른 고용 감소와 폐업 위기를 이유로 들며 최저임금 인상에 난색을 표한다. 지난 2018년 당시 최저임금이 16.4%로 급격히 인상되자 편의점 점주들이 경영난을 호소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들은 소득 감소와 인건비 부담을 주장하면서 동맹 휴업이나 공동 휴업 등을 추진하고, 가맹 수수료 및 카드 수수료 인하, 업종별 차등임금제 도입 등 대응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소규모 사업장은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 된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인건비 부담도 커지기 때문에 노사 간 극단적 대립과 언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특히 우리나라는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데, 인건비 부담을 고스란히 점주가 안게 돼 최저임금 인상에 알레르기적으로 반응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신자은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보기에 좀 더 합리적이고 조화로운 의사결정의 모습이 있으면 좋겠지만, 의견이 완전히 다른 동률의 집단이 협상의 형태로 최임위에 참여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힘겨루기는 어쩔 수 없는 구조"라며 "퇴장이나 불참 등의 행위는 노사가 자신들이 원하는 걸 관철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적인 행동이자 접근인 것 같다"고 했다.

◆방청도 언론 참관도 안 돼…속기록도 비공개 '철통'

최임위는 비공개 운영과 불명확한 최저임금 결정 기준 등으로 신뢰성과 공정성 논란도 제기돼 왔다. 최임위는 방청이나 언론 참관 등이 불가하며 전원회의 모두발언 이후 토론 과정이 비공개로 진행된다. 전원회의를 마친 뒤 회의 결과가 요약된 회의록만 배포할 뿐 상세한 속기록을 공개하지 않는다.

남우근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소장은 "최저임금 결정 때 근로자 생계비와 유사근로자 임금 수준,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만 돼 있고,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등을 얼마나 반영할지는 기준이 없다"며 "투명성과 공정성을 위해 최임위 결정 권한의 폭을 축소하고 국회와 법원 등 정부가 삼분하는 체제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임위는 반복적인 의결 파행과 비공개 운영, 불명확한 최저임금 결정 기준 등으로 신뢰성과 공정성 논란도 제기돼 왔다. 이 과정에서 노사 간 입장 차를 조정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게 공익위원이다. /더팩트 DB

공익위원은 최임위에서 노사 간 입장 차를 조정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공익위원이 표결을 주도하는 핵심 결정권을 갖고 있다. 하지만 공익위원 임명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공익위원 후보를 추천해 임명되는 방식이 비공개로 진행돼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부의 최저임금 인식이 공익위원 구성에 반영된다는 지적도 있다.

손 연구위원은 "노동자는 당연히 최저임금을 올리려고 하고, 사용자는 당연히 동결하려 한다. 투표를 하면 일방적으로 철수할 수 있기 때문에 공익위원이 결정을 하게 되는 구조"라며 "이 상황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의 추천과 대통령의 임명으로 결정되는 공익위원이 정부의 눈치를 보게 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공익위원 후보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대통령이 임명을 해야 누가 됐는지 알게 된다"며 "후보부터 먼저 공개하고, 공익위원을 국회 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익위원 신분 보장·상임화로 책임성 강화

이에 최저임금 결정의 키를 쥐고 있는 공익위원의 책임성을 강화하고, 부작용에 대응하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신 교수는 "최임위는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와 모두 연관돼 있지만 사전·사후 공조하며 함께 책임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면서 "최저임금 문제가 단발적으로 뜨겁고 부작용 우려가 큰 건 이런 구조적 문제에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공익위원은 심의 기간에만 활동하는 비상임위원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최저임금 결정 이후에는 아무런 책임과 권한도 없다. 상임위원 형식으로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고, 기획재정부와 금융기관, 금융감독원 등 최저임금 관련 다른 기관과의 연계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손 연구위원은 "단순히 임금을 높이고 낮추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산업 구조를 둘러싼 정책에 대한 고민이 정부와 최임위 내에서 부재하다는 한계가 있다"며 "공익위원들의 신분을 확실하게 보장해주고 결과에 따른 책임을 지게 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노사의 추천을 거쳐 의회가 임명한 전문가들로 최임위를 구성하고 세밀한 자료와 근거에 기반해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을 정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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