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다빈 기자]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고 박종철 열사가 1987년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으로 숨진 지 14일로 39주기를 맞았다. 하지만 박종철을 비롯해 이한열 등 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이들은 여전히 '유공자'가 아닌 '관련자'로 남아 있다. 국가의 공식적 예우를 위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민주유공자법)이 27년째 표류돼 있기 때문이다.
14일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현행법상 민주화운동 관련 법률은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주화보상법),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5·18 민주유공자법) 세 가지다.
4·19 혁명 관련 사망·부상·공로자들은 국가유공자법 4조에 따라, 5·18 민주화운동 사망·부상·공로자들은 5·18 민주유공자법에 근거해 각각 '국가유공자'와 '민주유공자'로 인정됐다. 보훈 대상자가 된 이들과 유족은 국가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것에 대한 합당한 예우를 받고, 교육·취업·의료 지원 등을 받는다.
다만 5·18 민주화운동과 4·19 혁명을 제외한 다른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은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관련자로 규정돼 있지만, 아직 유공자로서의 법적 지위를 부여받지 못한 상태다. 이에 지난 1998년 15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민주유공자법이 발의됐다.
민주유공자법은 6월 민주항쟁과 부마민주항쟁, 유신반대투쟁 등 민주화운동으로 다치거나 숨진 이들을 유공자로 지정하고, 유족이나 가족에 대해 의료∙양로∙요양 지원 등을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15대 국회 이후 21대 국회까지 10차례 이상 꾸준히 법안 발의가 추진됐으나,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운동권 출신 현직 국회의원이 혜택을 받거나 모호한 유공자 선정 기준 등을 이유로 특혜 논란이 일면서다.
지난 2024년 21대 국회에서는 20여년 만에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4년 5월 민주유공자법을 포함한 4개 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고, 21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면서 결국 법안이 폐기됐다.
유족들은 "민주유공자법을 제정하는 것은 우리 부모들의 사명"이라고 호소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는 지난 2021년 10월7일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을 진행 중이다. 유족들은 매일 오전 7시30분 '국회는 언제까지 유가족의 눈물을 외면할 것인가', '20년 기다렸다. 지금 당장 국회는 민주유공자법 제정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4년여간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장남수 유가협 회장은 "유족들이 바라는 것은 실질적인 혜택이 아닌 민주화운동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 뿐"이라며 "과거의 독재정권에서 반대 발언을 하고 싸웠던 사람들은 불순분자로 불렸다. 민주유공자법을 꼭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희생자들 덕분에 독재를 몰아내고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발전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20여년간 유공자 선정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지에 대한 갈등이 많았다"며 "관련자가 아닌 유공자로서 이름이 올라가고 인정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사망자 136명과 상해자 693명만이라도 대상자로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선순 유가협 총무는 "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사람들은 당시 대학생이거나 미혼이고, 그 부모님들도 대부분 돌아가신 상황이라 실질적으로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나라를 바로잡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온당하지 않았던 정부에 맞서 목숨까지 바친 사람들이라는 점을 법으로 남기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년 넘게 제자리에만 머무르던 민주유공자법이 올해는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국가보훈부는 지난해 12월 신년 업무보고에서 "국민이 공감하는 보상과 예우를 실현하겠다"며 민주유공자법을 제정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현재 민주유공자법은 22대 국회에서 재발의됐고, 지난해 9월 국회 본회의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다. 오는 3월 본회의 표결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장 회장은 "이번엔 정부도 언급하고, 패스트트랙으로 진행된 만큼 통과될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다"며 "기억되지 않았지만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바쳤다. 민주유공자법이 제정된다면 역사교과서에 136명의 민주화운동 사망자들의 이름 정도는 실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