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송다영 기자] 영풍·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이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에서 양측이 회사 손해에 대한 이사들의 책임 여부룰 두고 공방을 벌였다. 다음 재판은 법원의 인사이동으로 재판부가 변경될 예정이어서 이들의 경영권 분쟁도 해를 넘길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김석범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영풍·MBK가 고려아연 이사들 10명을 상대로 손해를 배상하라며 제기한 주주대표 소송의 2차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주주대표 소송은 회사의 이사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선관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 회사가 손해를 입었을 경우,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의 책임을 묻고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주가 승소해서 받는 배상금은 회사로 귀속된다.
이날 재판에서는 양측이 각각 20분 분량의 모두변론을 진행했다.
영풍 측은 최윤범 회장을 비롯한 고려아연 임원들이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가운데 이사회를 장악하려고 위법한 공개매수를 벌여 본인들의 경영권을 보호하려 한 것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영풍 측은 "최 회장은 2019년부터 수천 억 대의 묻지마 깜깜이 투자와 주주가치를 훼손했다. 최근 횡령 혐의로 1심 유죄(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판결을 받은 최창배 원아시아 대표를 봐도 고려아연이 주식을 담보로 대출까지 하며 펀드를 투자한 돈이고, 최 회장이 90%대인 사적 조합이 투자를 해서 출자를 하기도 했다"라며 "이런 투자를 엑시트해서 시세차익을 실현했는데, 이는 고려아연을 사적으로 이용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영풍 측은 고려아연이 미국 폐기물 수거 업체 이그니오를 인수한 것도 회사에 손해를 끼친 거라고 주장했다.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이그니오를 비싼 가격에 인수했다는 것이다.
이그니오는 미국에서 전자 폐기물을 수거해 친환경 구리 생산 공정 원료를 가공하는 계열사로, 고려아연이 미국 법인인 페달포인트를 통해 투자한 회사다.
또 영풍 측은 고려아연 이사회가 공개매수 당시 주식을 과도하게 올려 매수해 회사에 끼친 손실이 매우 크다고도 덧붙였다.
반면 고려아연 측은 영풍 측이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M&A를 진행하며 주주대표 소송을 남용하고 있다고 맞섰다.
고려아연 측은 "주주대표 소송은 전체 주주와 회사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인데, 이 사건은 영풍이 적대적 M&A라는 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소송을 남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고려아연은 다수 주주들의 절대적인 지지로 최 씨 일가가 경영해 왔고 그 과정에서 세계 1위 비철 금속회사로 성장했다"라며 "반면 총체적 경영난으로 만성적 적자를 겪으며 배당금에 의존하던 영풍이 외부 세력인 MBK와 결탁해 편법적이고 기습적으로 공개매수를 개시한 게 이 사건의 배경이자 원인"이라고 밝혔다.
고려아연 측은 "주주대표 소송의 본질은 전체 주주와 회사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제도다"라며 '의사 결정에 현저한 불합리가 없는 한 그 경영 판단은 허용되는 재량 범위 내의 것으로서 회사에 대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 내지 충실 의무를 다한 것'이라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고려아연 측은 영풍 측이 일본·미국·영국 등 외국 판례를 들며 고려아연이 이사들의 업무 행위에 대해 입증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전면 반박했다.
고려아연 측은 "상법 399조(이사가 법령을 위반할 행위를 하거나 임무를 위반할 시 회사에 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음)는 이사의 임무 행태에 대해 원고에게 입증 책임을 지고 있는데 영풍 측은 이런 입증 책임을 피고에게 돌리고 있다"며 "법제가 다른 일부 외국 판례만으로 상법 399조의 증명 책임을 함부로 전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내년 법원 인사이동이 있을 예정이라며 오는 3월 12일 세 번째 변론기일을 열기로 했다. 재판부가 변경에 따라 갱신 절차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영풍은 지난해 11월 고려아연 이사들이 선관주의의무를 다하지 않고 회사에 약 6732억 원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며 고려아연 이사회 구성원 13명 가운데 최윤범 회장을 비롯해 총 10명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고려아연 이사회가 1주당 56만 원 정도였던 고려아연 주식을 89만 원에 사들이는 공개매수를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자사주 총 204만 30주를 취득했기 때문에 회사는 그 차액에 주식 수를 곱한 만큼 손해를 입었다는 취지다.
고려아연 최대 주주인 영풍·MBK는 지난해 9월부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회사 경영권을 놓고 다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