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보다 '선택' 많은 고교학점제…현장 압박 키운다


해외 주요국 비해 선택과목 비중 커
상대평가 병행 혼란 가중…"취지 못 살려"

교육부가 2021년 발표한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계획에서 해외 고교학점제 운영 현황을 보면 다른 나라들은 필수과목으로 이수해야 하는 학점이 훨씬 더 많다. 사진은 서울의 한 고등학교./더팩트 DB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선택과목 중심의 고교학점제 구조가 학교 현장 여건과 맞지 않아 혼란을 부른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고교학점제는 선택과목 비중이 해외 주요국에 비해 특히 높아 교사에게 수업 운영 부담을, 학생에게는 과목 선택 압박을 가중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르면 고교학점제는 총 192학점(2560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1학점은 50분 기준 16회를 이수하는 수업량이다. 192학점은 △필수 84학점 △선택 90학점 △창의적 체험활동 18학점으로 배당돼있다. 창의적 체험활동을 빼고 따져보면 필수 대 선택 비율은 1 대 1.07 정도로 선택과목 이수 비중이 필수보다 많다.

해외와 비교하면 구조 자체가 이례적이다. 교육부가 2021년 발표한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계획에서 '해외 고교학점제 운영 현황'을 보면 다른 나라들은 필수과목으로 이수해야 하는 학점이 훨씬 더 많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5대 2(필수 150학점·자율 60학점),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3대 2(필수 18학점·자율 12학점), 중국은 4대 1 (필수 116학점·자율 24학점)수준이다.

평가 방식도 특이하다.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된 올해 1일부터는 일부 과목을 제외하고 학생이 도달한 성취도(A~E)와 함께 석차 등급(1~5등급)이 병기되는 상대평가다. 고교학점제에서 선택 과목은 일반 선택, 진로 선택, 융합선택으로 나눠지는데 선택 과목 중 일부 과목(체육·예술·교양 교과(군), 과학탐구실험, 사회·과학 융합선택 과목)은 성취도만 기재되는 절대평가 방식이다. 반면 미국, 캐나다, 중국 등은 모두 절대평가를 채택했다.

교원단체는 높은 선택과목 비중과 상대평가가 맞물려 현장 부담이 커졌다고 비판한다. 김희정 교사노동조합연맹 고교학점제TF 팀장은 "예를 들면 기존에는 물리Ⅱ 한 과목이던 수업을 역학과 에너지, 전자기와 양자, 물질과 에너지로 세 개로 쪼개놓고 학기별로 배우는 상황"이라며 "교사 한 명이 맡게 되는 수업과 평가부담이 커지고, 학생 입장에선 한 반 인원이 줄어드니 '등급 경쟁'이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선택과목이 확대됐지만 정작 학생들이 진로·적성에 맞게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지도 회의적이다. 고교학점제 체제에선 학생 수가 적은 학교는 선택과목 수도 줄어드는 데다 학생 수가 적을수록 평가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최근 공개한 ‘고교학점제 본격 적용 첫해 학교 교육과정 편제 경향’ 보고서를 보면 전 학년 20학급 이상 대규모 고교의 선택 과목 수는 평균 84.08개, 20학급 미만 학교는 76.79개였다.

김 팀장은 "상대평가에서는 A과목을 듣고 싶더라도 학생들이 더 많아 내신 따기 유리한 B과목을 고르게 된다"며 "9등급제가 5등급제로 완화했더라도 어느 학교에 입학하느냐, 매 학기 어떤 과목을 고르느냐가 대입 유불리를 좌우한다고 생각하면 학생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은 더 클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학점 이수 기준 완화를 중심으로 고교학점제 개선안을 논의하고 있다.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절대평가 확대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높지만, 현재 논의는 선택과목에 한해 성취율 40% 기준을 폐지하고 출석만 충족하면 이수를 인정할지 여부에 초점을 둔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진로선택과목이 절대평가였지만 현 고1부터는 거의 모든 과목이 상대평가로 전환돼 과목 선택 왜곡을 불러오는 만큼 절대평가화 논의는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절대평가를 전면 확대하려면 학교 내신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고교서열화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해야 하는데, 이를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chaelo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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