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1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사법부·검찰·경찰 '대격변'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 급물살
검찰 출범 78년 만에 폐지 운명
경찰 수장 공백에 인사 지연 '혼란'

12·3 비상계엄 이후 사법부와 검찰, 경찰도 격변의 1년을 보냈다./더팩트 DB

[더팩트ㅣ김영봉·송다영 기자] 12·3 비상계엄 이후 사법부와 검찰, 경찰도 격변의 1년을 보냈다. 비상계엄과 탄핵을 거쳐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법개혁이 급물살을 타면서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재판소원 제도 도입 등에 직면했다. 검찰은 설립 78년 만에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경찰도 수장이 내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면서 여진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법개혁 과제로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제 도입 △내란 전담 재판부 설치 등을 추진 중이다. 당에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법불신 극복·사법개혁 정상화 TF 등 조직을 두고 속도를 내고 있다. 법원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을 구속 취소하고 대법원이 대선 직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이재명 당시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사건이 불쏘시개가 됐다.

대법관 증원은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1년에 4명씩 증원해 2028년까지 26명으로 늘리는 것이 골자다. 내란 전담 재판부는 현재 가동 중인 3대 특별검사팀(내란·김건희·채해병)이 기소한 사건만을 전담하는 법원 내 별도 재판부를 설치하자는 것이다. 현재 1심을 진행 중인 재판이 있는 만큼 서울고등법원에 2심 재판부를 설치하고 법관 3명을 배치한다는 방안이 유력하다. 내란 전담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의 구속취소,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구속영장 청구 기각 등 내란 핵심 연루자들의 신병 확보가 무산되며 이른바 '심판 여론'이 급등하며 부상했다.

재판소원 제도 도입은 법원 판결의 위헌 여부를 헌법재판소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으로 헌법재판소법 68조 1항의 헌법소원심판 청구 대상에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재판소원이 사실상 4심제가 되며 위헌이라는 지적, 재판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늘어나 당사자들의 부담이 커진다는 우려도 있다.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왼쪽)이 4일 국회의장접견실에서 열린 환담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다. /국회=배정한 기자

◆'트리거' 된 윤석열 즉시항고 포기로 검찰청 폐지 운명

지난 9월 검찰청 폐지를 핵심으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검찰은 출범 78년 만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됐다.

윤석열 정부 시절부터 수사권 남용·형평성 논란은 있었지만 '즉시항고 포기'가 방아쇠를 당겼다. 법원이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굳어진 기존 형사실무를 뒤엎고 윤 전 대통령의 구속을 취소했는데도 검찰이 스스로 법적으로 다퉈볼 기회를 포기한 것이다. 특검 수사 결과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놓고 불기소 처분한 김건희 여사가 구속기소되는 상황에 이르자 '봐주기' 논란까지 일파만파 번졌다.

결국 검찰은 수사권은 중대범죄수사청으로 넘겨주고 공소유지 기능만 갖는 공소청으로 축소 개편될 운명에 처했다.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가운데 보완수사권 유지가 검찰의 명운을 건 마지노선이 되고 있다.

3대 특검이 출범하며 검찰은 극심한 인력난에도 시달리고 있다. 수사 인력은 100명 이상 대규모로 파견됐다. 업무가 지체되며 미제 사건은 빠르게 증가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전국 검찰청의 미제 사건은 10만146건을 기록했다. 특검 출범(6월 말) 당시 미제사건이 7만3395건이었는데, 8월 말에는 9만5730건으로 급증했다. 외적으로는 개혁 요구에, 내적으로는 업무 폭증이라는 이중고에 처한 셈이다.

최근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사태에 검찰 지휘부 줄사퇴까지 이어지는 등 내부 무력감은 더 커졌다. 검찰 지휘부가 김만배 씨 등 이른바 '대장동 일당'이 연루된 사건 1심 판결에 항소를 포기하면서 검찰은 들끓었다. 대장동 수사·공판 검사들이 대검과 법무부 등 윗선 외압 의혹을 제기했고, 정진우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노만석 전 검찰총장 대행은 법무부 의견을 참고해 정 전 지검장과 협의했다고 해명했으나, 결국 항소포기 5일 만에 검찰청을 떠났다.

검찰이 동력을 잃자 이른바 평검사들의 탈주도 이어졌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1월 10일까지 퇴직한 검사는 161명으로 최근 10년 새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퇴직자 수 132명, 정권 교체 당시였던 2022년 146명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올해 퇴직자 중 3분의 1인 52명은 10년 미만 저연차 검사였다.

◆경찰 인사 무기한 지연…계엄 가담 색출에 긴장

계엄 1년이 지났지만 경찰 역시 여전히 뒤숭숭한 모습이다. 무기한 미뤄지고 있는 인사에, 계엄 가담자 색출, 조직 개편까지 이어지면서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조지호 경찰청장이 탄핵 소추된 이후 1년째 경찰청 차장의 직무대행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수장 공백에 인사도 지연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치안정감과 치안감 승진 인사는 발표됐지만, 후속 인사는 미뤄진 상태다. 경찰은 통상 11월 말 근무성적평정을 마치고 고위직부터 순차적으로 정기인사를 단행해 왔으나, 올해는 그 일정조차 장담하기 어렵다.

특히 정부가 '헌법존중 정부혁신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면서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TF가 계엄에 연루된 주요 기관으로 경찰을 지목하면서 계엄 관여 정황이 있는 이들은 인사를 앞두고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TF 조사 결과에 따라 윤석열 정부에서 경무관·총경 승진 내정됐던 후보자들의 전면 재조정 가능성도 있다. 올 상반기 경무관 승진임용 예정자는 30명, 총경 승진임용 예정자는 104명이다. 이들은 이미 수개월째 임용 명령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심우정(오른쪽) 검찰총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을 방문해 조지호 경찰청장과 이동하고 있다. 2024.09.30. /뉴시스

경찰 조직 개편도 관심이다. 경찰청은 '국민안전·경찰조직개편 TF'를 통해 연말까지 직제 개편을 마무리하고, 이를 내년 상반기 인사에 반영할 예정이다. 이번 개편은 윤석열 정부에서 축소되거나 폐지된 기능의 원상회복 성격이 강하다.

우선 외사·정보 기능을 다시 강화할 방침이다. 캄보디아 등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사기 사건이 급증하면서 국제협력관실을 국제치안협력국으로 확대하고, 국제공조과를 1·2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국 경찰서 정보과 복원도 추진되고 있다. 전국 261개 경찰서에 정보과·정보계를 다시 설치하고, 시·도경찰청 광역정보팀은 폐지하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 경찰청에는 외사정보과, 시·도청에는 외사정보계를 신설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지난 2023년 신설된 기동순찰대(기순대)는 정원을 크게 줄이는 쪽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이미 지난 8월 330명을 감축한 데 이어 현재 2338명 중 1100~1200명을 줄이는 안이 추진되고 있다. 감축된 인력은 외사·정보 분야에 우선 투입될 전망이다.

경찰 관계자는 "인사 적체가 길어지면서 사기 저하와 내부 갈등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조직 개편과 정책 추진을 지연시키는 것은 물론, 치안 대응력 약화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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