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에 수천명 숨졌는데…피해조사 정부 맘대로


의무에서 정부 판단으로 바뀌어 국회 통과
환자들 "전수조사·개별피해, 정부 의지 의문"
복지부 "개별사례 인과 증명 어려워"

29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료대란 피해조사 관련 법이 의무가 아닌 정부 재량으로 결정되면서 최근 1년 6개월 의정갈등에 따른 환자들의 피해 전수조사 실시 여부가 불확실해졌다. 의정갈등으로 수천명 이상이 사망했지만 피해 전수조사와 대책 마련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사진은 2024년 9월 15일 오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구급대원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더팩트[더팩트ㅣ이준영 기자]

[더팩트ㅣ이준영 기자] 의료대란 환자피해조사 관련 법이 의무가 아닌 정부 재량으로 결정되면서 최근 1년 6개월 의정갈등에 따른 환자 피해 전수조사 실시가 불확실해졌다. 의정갈등으로 수천명 이상 사망했지만 피해 전수조사와 대책 마련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26일 본회의를 통과한 보건의료기본법 개정안은 의료대란에 따른 피해실태 조사를 정부 의무가 아닌 재량으로 정했다.

법 개정 내용을 보면 '보건복지부 장관은 보건의료 위기상황이 발생한 경우 국민 건강 피해를 파악하기 위해 신속하게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공표할 수 있다'는 내용과 '실태조사 결과에 따라 위기상황에 대응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대책을 수립 시행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2월부터 올해 9월까지 1년 반 이상 지속된 의정갈등에 따른 환자 피해조사를 의무가 아닌 복지부 판단에 맡긴 것이다. 피해 조사는 의료대란에 따른 환자 피해 보상 등 권익을 구제하기 위한 전제에 해당한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 분석 결과,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공백 시기 초기인 지난해 2∼7월에만 전국 의료기관에서 초과 사망한 환자는 3136명이었다. 초과 사망은 위기가 없었을 때 통상적으로 예상되는 사망자 수를 넘은 수치다.

당초 개정안 원안은 피해 조사가 정부 의무였다. 지난 3월 김윤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원안은 '복지부 장관은 보건의료 위기상황이 발생하거나 발생 우려가 있는 경우 국민 건강 피해를 파악하기 위해 신속하게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공표하며, 조사 결과에 따라 대응하고 필요한 경우 지체없이 대책을 수립 시행해야 한다'며 정부에 의무를 부과했다.

다만 원안도 '공포후 6개월 결과한 날부터 시행한다'는 부칙과 함께 '보건의료 위기상황이 발생하거나 발생 우려가 있는 경우 피해조사를 한다'는 내용이어서 당시 이미 진행중인 의료대란에 소급 적용이 가능한지 논란이 있었다. 환자들은 최근 의료대란에 소급 적용이 안된다며 김윤 의원에 문제를 제기했었다.

이 같은 원안은 지난 8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논의를 거치면서 실효성이 더 악화됐다. 보건복지위원회는 '보건의료 위기상황이 발생한 경우'로 용어를 바꿔 최근 의료대란도 피해조사 대상에 명확히 포함했지만 피해조사 실시 의무성을 없앴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복지부 재량으로 바뀌면서 제대로 된 피해조사가 이뤄질지 의문을 제기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환자 피해조사가 정부 의무가 아닌 재량으로 법 내용이 바뀌면서 복지부가 나설지 의문"이라며 "복지부가 피해조사를 하더라도 신고된 사례에 국한하지 않고 전수조사 해야하는데 조사 범위를 좁히거나 인과관계 증명이 어렵다는 이유로 개별사례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복지부는 피해조사 여부와 범위를 검토하고 있지만 개별사례 인과관계 증명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 14일 국정감사에서 김윤 의원이 "양적 피해 규모 추정도 중요하지만 개별적 피해에 대한 심층분석과 전수조사도 필요하다"고 복지부에 제안했다. 이에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피해 영향에 대해 큰 틀 분석은 한다고 했었다"면서도 "개별사례 조사는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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