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캠 킬링필드③] 마석도는 영화일 뿐…MZ조폭 캄보디아 진출에도 수사 한계


외교 마찰 우려에 독자적 형사권 행사 불가능
영사 전문성 부족·수사기관 권한 축소도 지적

캄보디아가 온라인 스캠(사기)의 온상으로 떠오르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그래픽=팽서현 기자

캄보디아가 온라인 스캠(사기)의 온상으로 떠오르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캄보디아 내 스캠의 배후에는 다수의 중국계 범죄조직이 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하고 물가가 저렴하며 부정부패로 단속이 느슨한 틈을 타 캄보디아에 똬리를 틀고 앉았다. '웬치'라고 불리는 스캠단지를 조성한 이들은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보이스피싱과 사이버사기,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은 물론, 폭행과 납치, 감금, 고문에 인신매매, 살인까지 저지르며 피해를 양산했다. <더팩트>는 현지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1970년대 '크메르 루주' 공산당 정권의 대량 학살을 일컫는 '킬링필드' 이후 이번엔 스캠에 멍든 캄보디아 상황을 재조명해본다. <편집자주>

[더팩트ㅣ김영봉·강주영·정인지 기자]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는 형사 마석도(마동석)가 주먹 하나로 해외에서 활동하는 범죄조직을 소탕하고 법의 심판을 받게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수갑 하나 마음대로 채울 수 없다. 캄보디아 스캠단지에 한국인이 가담하고 피해를 입고 있지만 경찰이 현지에서 직접 이들을 수사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외교적 마찰 우려에 상대국의 협조 없이는 공권력을 행사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 기업형 범죄조직, 캄보디아 권력과 유착…'돼지도살' 활개

27일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와 기업과인권리소스센터(BHRRC) 등에 따르면 국제사회는 대표적 캄보디아 스캠조직으로 프린스 그룹과 LYP 그룹을 주목한다. 프린스 그룹은 금융, 항공, 물류, 카지노 등 캄보디아 경제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 행사하고 있다. 천즈(38) 프린스 그룹 회장은 중국 출신으로 지난 2014년 캄보디아로 귀화했다. 약 10개의 스캠조직을 운영하며 범죄로 벌어들인 수익은 자신이 소유한 은행과 카지노, 부동산 개발 등을 통해 세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즈 회장은 캄보디아 정부에 거액을 기부해 '네악 옥냐'라는 국가공로자 작위를 받았다. 옥냐는 명예 귀족직으로, 현지에서는 돈으로 사는 권력층으로 불린다. 천즈 회장은 '돼지 도살자'로 불린다. 돼지 도살이란 신뢰를 쌓은 뒤(돼지를 살찌운 뒤) 거액의 투자를 유도해 돈을 가로채는(도살하는) 것으로, 로맨스 스캠이 대표적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앙코르와트 등 유적과 아름다운 해변 휴양지로 각광받던 캄보디아가 스캠조직의 아지트로 전락한 것은 최근 3~4년 새다. 국제사회는 국제 인권단체들의 지적에 따라 대표적 캄보디아 스캠조직으로 프린스 그룹과 LYP 그룹을 주목한다./그래픽=이영주 기자

기업과인권리소스센터는 LYP 그룹도 대표적 기업형 범죄조직으로 지목했다. LYP 그룹은 훈센 전 총리의 최측근이자 집권당인 캄보디아인민당(CPP) 소속 상원의원 리용팟이 소유하고 있다. 코콩 경제특구에서 카지노와 호텔, 리조트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프린스 그룹과 LYP 그룹 모두 스캠은 물론, 납치와 감금, 인신매매 등 각종 범죄 의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캄보디아 권력층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실상 치외법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현지 경찰도 함부로 손대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제앰네스티는 올해 6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정부가 범죄단지를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캄보디아 전역의 범죄단지 53곳 중 33곳은 단속 이후에도 여전히 운영 중이며, 18곳은 단속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윤해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실장은 "동남아시아는 사이버범죄 규제가 약해 온라인 도박이나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이 몰리고 있다"며 "특히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 사회주의 국가 등은 부정부패가 심하고 군·경찰이 돈을 받고 범죄조직을 봐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 현지 경찰 협조 여부에 '성패'…범정부 차원 공조체계 구축 시급

전 세계 약 30개국에서 사업하고 있는 프린스 그룹은 최근 국내에서도 활동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프린스 그룹은 '킹스맨 부동산 그룹'으로 이름을 바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한 빌딩에서 사무실을 운영했다. 경찰은 이른바 'MZ조폭' 등 한국 범죄조직이 캄보디아 등에 진출한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가 온라인 스캠(사기)의 온상으로 떠오르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캄보디아 국기./AP.뉴시스

문제는 해외에서 경찰의 공권력 행사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국제형사법상 다른 국가의 영토 내에서 독자적 형사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 1961년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 제41조가 규정한 '내정 불간섭 원칙'에 근거한다. 이 때문에 상대국 경찰의 협조 없이는 단 한 건의 강제수사도 불가능하다.

해외 주재관 경험이 있는 한 경찰관은 "해외에서 우리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정보 수집과 협조 요청뿐"이라며 "체포나 압수수색 같은 강제수사는 모두 현지 경찰의 판단과 협조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자칫 상대국 주권 침해나 외교적 마찰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결국 외교부와 법무부, 경찰청 등 유관기관이 공동으로 대응하는 범정부 차원의 공조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그는 "영화 속 마석도처럼 해외 현장에서 바로 체포하거나 강제수사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외교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다른 나라 영토에서 공권력을 행사하면 외교 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외국에서는 수갑 하나도 마음대로 채울 수 없다"며 "결국 외교 절차를 거친 뒤 상대국 경찰과의 신뢰가 곧 수사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 땅에서 중국인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중국 공안이 직접 와서 체포나 수사를 하겠다고 하면 우리 국민이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겠냐"며 "그만큼 해외에서 우리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캄보디아가 온라인 스캠(사기)의 온상으로 떠오르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캄보디아 고문 살인사건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임영무 기자

일각에선 외교부 영사의 전문성과 인력 부족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 대응에는 형사사건 절차를 이해하고 수사 경험이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며 "일부 영사들이 전문 교육이나 실무 경험 없이 파견돼 실제 사건 현장에서는 대응이 지연되거나 경찰과의 협조가 원활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윤해성 실장은 "동남아시아는 사이버범죄 규제가 느슨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해 범죄조직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라며 "한두 명의 주재관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기에 범정부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한국의 정보·수사기관 권한이 지나치게 축소돼 국제범죄 대응력도 떨어졌다"면서 "미국·영국은 온라인 수색과 감청 등 정보수집권을 법적으로 허용해 초국가적 범죄에 대응하고 있다. 우리도 사이버범죄 협약(부다페스트 협약) 가입을 위해 이행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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