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채원 기자] 학교에서 실시하는 정서·행동특성검사가 자살 위험 학생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로 '학생 마음건강 지원'을 내세우고 있지만 기존 정책도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가 학생들의 정서불안, 대인관계·사회성, 학교적응 등을 진단하기 위해 실시하는 검사는 두 가지다. 하나는 매년 4월 초등학교 1·4학년과 중·고등학교 1학년 대상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정서행동검사), 다른 하나는 초중고 모든 학생 대상으로 교사가 학생의 정서·행동 상 어려움을 1차로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진행하는 마음 이지검사다. 두 검사 모두 학생의 정서·행동문제에 대응하고 학교폭력 피해나 자살 징후 등 위기학생을 조기에 발견해 관리하는 데 목적을 둔다. 교육부는 지난해 2월 마음 이지검사를 도입하면서 "적기에 학생들의 마음건강 위기가 발견되고 필요한 조치가 지원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학생의 마음건강을 최우선으로 지원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과 법률 마련 등을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시행되는 검사로는 고위험 학생을 걸러내엔 부족한 실정이다. 21일 좋은교사운동과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 학생 중 정서행동검사에서 관심군(일반·우선관리군,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됐던 비율은 19.9%였다. 자살학생 10명 중 2명 정도만 검사로 위험성이 조기 진단된 것이다. 2023년은 17.7%, 2025년 현재(6월 30일까지) 기준 10.9%였다.
정서행동검사 대상자가 아닌 학생의 마음건강 위기를 조기에 발견하지 못한다는 기존 한계를 보완하고자 도입됐던 마음 이지검사는 활용률부터 매우 낮았다. 전체 학생 수 대비 실시 학생 수 비율이 1.16%에 불과했다. 검사를 실시하는 데 학생과 학부모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정서행동검사에서 관심군으로 나타난 학생 비율이 4.4%인 점을 감안하면 수시 선별 검사로서의 제 기능을 하고 있다 말하기 어렵다. 강 의원실 관계자는 "검사를 몰라 활용도가 낮을 수 있지만 그보다는 어려움이 있는 학생에게 검사를 권하기가 어려운 게 더 큰 원인"이라며 "학생과 학부모가 '문제학생'으로 낙인을 우려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겨 거절하는 경우가 많아 교사도 적극적으로 요청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정서행동검사에서 관심군으로 분류된 학생이 연계되는 2차 기관은 위(Wee)센터,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 병·의원 등이 있다. 학생은 해당 기관에서 정서·행동 문제 심층 평가를 거쳐 상담이나 치료 등 필요한 지원을 제공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관심군 학생 중 2차 기관으로 연계되지 못한 비율은 15.4%였다. 2차 기관 미연계 비율은 시도교육청별로 편차도 컸다. 가장 낮은 대전은 0.9%인 반면 가장 높은 서울은 26.8%에 달했다. 좋은교사운동은 "관심군 학생의 2차 기관 미연계 사유는 학생과 학부모의 거부가 압도적"이라며 "선지원, 후안내 방식의 선제적 접근과 교육당국 차원의 질 높은 지원 방안 마련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마음건강 관련 지표는 매년 악화하는 추세다. 1일 국가데이터처가 발간한 '아동·청소년 삶의 질 2025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아동·청소년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3.9명이었다. 2000년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12개월 내 2주 연속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아동·청소년의 비율도 4.9%로 집계됐다. 지난해 중·고교생에게 평소 스트레스를 얼마나 느끼는지 물어본 결과 '대단히 많이' 또는 '많이'라고 답한 비율은 42.3%였는데 2023년 37.3%에서 5.0%포인트(p) 증가했다.
제도 보완뿐 아니라 학생들이 놓인 경쟁적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루피나 마음푸름심리센터 센터장은 "마음건강은 아이들 스스로가 살필 게 아니라 주변의 선제적 노력이 필요하다"며 "학부모들도 아이들이 처한 정서적 어려움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황 센터장은 "불안장애와 우울증엔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초등학생들조차 학업 스트레스를 강하게 호소하고, 자살충동이나 자해로 이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며 "정서적 돌봄을 강화하는 정책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론 경쟁적 입시 환경을 완화하는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