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 대전환 시대에 발맞춰 인터넷 종합 미디어 <더팩트>와 <개인정보보호법학회>가 손잡고 '인공지능 대전환시대 데이터법제의 발전'을 주제로 한 기획 칼럼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번 기획은 AI 혁신을 위한 필수 과제인 데이터의 활용과 보호 간 균형을 맞추는 정교한 법제도 정비의 중요성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AI 시대에 맞는 개인정보보호법 재설계의 필요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이끌어낼 예정입니다. 데이터가 어떻게 수집되고, 활용되며, 보호돼야 하는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학문적 분석과 사회적 담론을 제공합니다.<편집자 주>
[더팩트 | 방동희 교수(연세대 로스쿨, 개인정보보호법학회 부회장)] 2011년 '개인정보 보호법'이 제정되고 14년의 꽤 긴 시간이 지났다. 제정 '개인정보 보호법'은 공공과 민간 분야, 그리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포괄하는 전 분야에 대해서 정보주체가 자신의 개인정보 사용에 대하여 동의권한을 갖고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자에게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는 해당 개인정보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체계를 갖추는 데 초점을 뒀다. 소위 ‘정보주체’가 갖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법률상 권리로 규정하고 그 행사 방법을 구체화했던 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없어진 정보사회에서 컴퓨터와 온라인에 기록되는 개인정보는 데이터로 저장되고 수집되며 그 이용과 제공이 매우 간편하게 이뤄진다. 이러한 개인정보의 저장과 이동의 편이성은 개인정보의 무한 복제 및 활용을 가능하게 했으며, 나아가 개인정보의 무단 사용, 프라이버시권과 인격권 침해, 개인정보를 활용한 2차 3차의 경제적 피해의 상황까지 마주하게 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제정 '개인정보 보호법'에서는 ‘개인정보’의 범위를 상당히 폭넓게 정의했고, ‘개인정보 보호 원칙’도 매우 엄격하게 정했으며, ‘개인정보의 수집·이용·제공’ 시 정보주체의 사전동의 또는 사전적 법률유보 사항을 매우 구체적으로 정해 놓았다. 즉 제정 '개인정보 보호법'은 공공과 민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불문하고 개인정보로 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엄격하게 보호하고 이를 위해서 원칙적으로 정보주체의 사전동의 또는 법률유보가 필요하다는 기조를 확고히 했다.
인공지능 대전환의 시대, 제정 '개인정보 보호법'상 개인정보의 ‘개념’과 ‘보호 체계’가 AI기술·산업의 발전과 개인의 기본권을 균형있게 보장하는 합당한 규율로 적절한지에 대하여 논의가 필요한 때가 되었다. 이러한 논의는 근년에 이뤄진 '개인정보 보호법'의 개정을 통해서도 이미 시도됐다.
2020년 일부개정 '개인정보 보호법'에서는 제정 '개인정보 보호법'상 과도하게 넓게 정해졌던 개인정보의 개념을 가능한 한 확정하고 적정한 범위로 한정하는 개정을 단행했다. 또한 개인정보의 하위 개념으로 ‘가명정보’를 정하고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을 위하는 경우에는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도 가명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근거까지 마련했다.
즉, AI시대의 AI기술과 산업을 작동하게 하는 기초원료라 할 수 있는 ‘데이터’의 원활한 사용을 위하여 개인정보에 대한 엄격한 원칙적 보호의 틀을 완화하거나 아예 원칙 규율의 틀에서 제외시킴으로써 AI 대전환의 시대에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에 있어 균형 잡힌 규율로의 규범 재정립을 과감하게 시도한 것이다. 그간 ‘보호’ 일변도의 개인정보를 이제 ‘활용’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통로를 마련한 획기적인 입법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개인정보 중 가명정보에 대해서는 폭넓고 자유로운 활용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디지털 대전환의 AI시대를 선도하겠다는 우리 국가의 목표와 의지에 대한 입법정책적 결단으로 볼 수 있다.
가명정보 활용의 근거 마련은 유럽연합의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개인정보 보호의 대상과 수준을 차등함으로써 보호할 개인정보와 활용이 가능한 개인정보로 분리하고 활용가능한 개인정보는 AI기술과 산업에 적극적으로 쓰자는 국민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개인정보에 있어 완전히 개인화된 정보주체의 영역과 이를 제외한 개인의 사회활동 영역을 구별하고 이 중 후자를 가명정보로 개념화하여 통계 작성, 과학적 연구 등에 활용함으로써 여러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통해 국민 삶의 질 향상시키는 등 그 후방효과를 충분히 가져오자는 것이다.
가명정보의 활용은 제정 '개인정보 보호법'상 절대적 보호에 집중된 무게중심의 추를 공익적 이용과 활용을 허용하는 새로운 지점으로 이동하여 보호와 이용의 균형을 도모하자는 취지로 궁극적으로 데이터 순환을 가능하게 하고 이를 통한 혁신과 효율성 증진이라는 사회적 공익을 달성하겠다는 함의를 동시에 담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법'이 보장하려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도 불가침의 절대적 기본권으로 보기 보다는 일정 정도의 사회적 기속성을 갖는 상대적 기본권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개인이 만들어내는 개인정보도 모두가 공존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서로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형성된다.
개인정보는 개인의 독자적인 속성과 사회적 관계성 속에서 만들어지는 혼합물이며, 이 중 사회적 관계성의 영역은 오로지 개인에게만 전속된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사회적 환경과 사회적 관계를 속성으로 하는 영역에 대해서 사회적 기속이라는 내재적 제약은 수인한도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인정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가명정보’의 개념과 이용에 관한 규율은 개인정보에 대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상대적 권리로서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과 더불어 개인정보의 데이터로서의 활용이라는 공익적 측면을 동시에 고려한 입법적 조치로 볼 수 있다.
최근 대법원은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한 가명처리의 정지를 구하는 소송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가명처리’는 일반 ‘개인정보의 처리’와 구별되며, 따라서 정보주체가 갖는 개인정보의 처리정지 요구권으로 가명처리의 정지를 구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25. 7. 18. 선고 2024다210554 판결).
이 판결에서 개인정보의 처리에 가명처리가 포함되는지 여부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대법원은 "데이터 관련 신산업 육성이 범국가적 과제로 대두되고 인공지능,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등 신기술을 활용한 데이터 이용이 필요한 상황에서 데이터의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가명정보 조항의 입법취지"를 그 논거로 제시했다. 문언적 해석의 한계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대법원이 가명정보 조항에 대한 합목적적 해석을 통하여 개인정보의 보호와 이용에 있어 균형을 꾀하려 했던 시도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 대전환의 시대, 14년된 ‘개인정보 보호법’의 틀을 그대로 유지해 나갈지, 아니면 이 또한 대전환의 대상이 되어야 할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되었다. 개인정보의 ‘보호’ 일변도의 '개인정보 보호법'의 구조와 체계는 여러 상황에서 다종의 문제를 일으키며 엇박자를 내고 있다. 인격권에 틀에 갇혀 있을 것인지, 경제적 기본권의 관점과 시각을 반영할 것인지의 문제, 보호와 이용의 균형점을 찾는 문제, 개인정보의 사회적 기속성을 인정하고 규범에 반영하는 방식의 문제, 개인정보의 공정한 이용관계와 질서를 수립하는 문제, 경쟁법적 제재수단의 집행 기준과 방식을 구체화하는 문제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문제들을 현행 '개인정보 보호법' 틀에서 합목적적 해석을 통하여 해결하는 방식은 분명 한계가 있다. 법문언 본래의 의미를 유월하거나 새 의미를 창조하는 해석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대전환의 시대, 개인정보의 규범 체계와 방식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여전히 ‘보호법’의 틀 속에 갇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가며 이러한 분쟁과 해석을 반복해 갈 것인지, 대전환의 시대 환경에 걸맞게 개인정보의 보호와 더불어 ‘이용’의 관점에서 ‘선순환구조의 공정한 가치사슬체계’를 만들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신속한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
▶AI 대전환시대 공동 기획 칼럼 관련 시리즈
[기획 칼럼⑪] AI 시대를 사는 정보주체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기획 칼럼⑩] 아동·청소년의 권리 보호, 잊힐 권리의 보장으로부터
[기획 칼럼⑨] 고인의 사생활 vs 유족의 추억...법의 공백에 방치된 ‘디지털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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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칼럼⑥] 개인정보를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변화가 필요하다
[기획 칼럼⑤] 인공지능 시대, 정보보호와 개인정보보호의 균형 있는 발전 전략
[기획 칼럼④] 인공지능 시대에서의 ‘정당한 이익’ 가치
[기획 칼럼③] 공개된 정보 활용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AI 학습데이터 물꼬를 터야
[기획 칼럼②] 인공지능 시대, 혁신 막는 '개인정보보호원칙' 이대로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