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 대전환 시대에 발맞춰 인터넷 종합 미디어 <더팩트>와 <개인정보보호법학회>가 손잡고 '인공지능 대전환시대 데이터법제의 발전'을 주제로 한 기획 칼럼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번 기획은 AI 혁신을 위한 필수 과제인 데이터의 활용과 보호 간 균형을 맞추는 정교한 법제도 정비의 중요성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AI 시대에 맞는 개인정보보호법 재설계의 필요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이끌어낼 예정입니다. 데이터가 어떻게 수집되고, 활용되며, 보호돼야 하는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학문적 분석과 사회적 담론을 제공합니다.<편집자 주>
[더팩트 | 한혜원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 개인정보보호법학회 국제이사)] 바야흐로 인공지능(AI) 시대다. AI 기술의 발전은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우리 삶을 전례 없이 편리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혁신을 위해서는 데이터, 특히 개인정보의 활용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AI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해 방대한 양의 개인정보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데이터 활용’과 ‘정보주체의 권리 보호’라는 두 가지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정보주체의 ‘동의’가 가장 중요한 개인정보 처리 근거로 활용되어 왔다.
그러나 AI 시대에 접어들며 이러한 ‘동의 만능주의’는 명확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AI 개발 과정에서는 수집 당시에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목적으로 데이터가 활용될 수 있으며, 복잡한 처리 과정을 정보주체가 명확히 이해하고 동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나아가, 2023년 9월 15일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 이후 ‘계약의 체결 및 이행’ 또한 개인정보 처리의 주요 근거 중 하나로 대두되었으나, AI 개발 맥락에서 필요한 방대한 양의 개인정보 처리의 근거로 활용되기에는 이 또한 한계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그동안 실무적으로 잊혀져 있던 개인정보 처리 근거인 ‘정당한 이익(Legitimate Interest)’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당한 이익’은 개인정보처리자가 개인정보를 처리할 정당한 이익을 가지고 있고 그 이익이 정보주체의 권리보다 명백하게 우선하는 경우, (동의 등 기타 처리 근거가 없더라도)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처리 근거이다.
그동안 이 ‘정당한 이익’은 실무적으로 거의 활용되어 오지 못하였으나, AI 시대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당한 이익’의 적극적인 활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실무적 걸림돌이 존재한다. 바로 개인정보 보호법이 정당한 이익이 정보주체의 권리보다 ‘명백하게’ 우선하는 경우로 그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명백하게’라는 불확실한 법률 용어는 기업 입장에서 마치 자신들의 이익이 정보주체의 그것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하여야만 한다는 오인을 하게 만들면서, 이로 인한 법적 리스크 때문에 정당한 이익 활용 자체를 주저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원인이 되어왔다. AI 시대의 데이터 활용과 기술 혁신을 더 이상 지체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명백하게’ 요건을 삭제 또는 완화하는 입법적 개선이나 최소한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는 유연한 법 해석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이익'이 무분별한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허가증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두 가치 사이의 균형점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 적용의 대전제인 '이익형량'에 있다. ‘정당한 이익’은 AI와 관련한 처리라고만 한다면 무조건적으로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을 인정하여 그 처리를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AI 의 맥락에서 살펴보자면, 개인정보처리자는 AI 기술 개발 및 서비스 제공이라는 본인을 포함한 사회 전체에 가져올 수 있는 편익과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보주체의 프라이버시 침해 위험을 비교·형량하여, 위 편익이 프라이버시에 대한 침해 위험에 명백하게 우선하는 경우에 한하여 ‘정당한 이익’에 근거하여 개인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정당한 이익’이 인정되기 위하여서는 AI와 관련한 처리 목적의 정당성, 개인정보처리자가 개발하거나 제공하고자 하는 서비스와 처리하는 정보와의 관련성, 그 처리가 발생시키는 프라이버시 침해 위험의 정도, 침해 위험을 저감시키기 위해 개인정보처리자가 취한 추가적인 조치 등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가 요청되며,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AI 시대의 ‘데이터 활용’과 ‘정보주체의 권리 보호’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위와 같은 이익형량 과정은 기업이 데이터 활용에 앞서 스스로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를 고민하고, 가명처리나 익명처리와 같은 기술적 보호조치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계속적으로 변화하는 개인정보 침해 위협에 대한 보다 선제적이고도 적극적인 대응이 가능하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정보주체는 자신의 정보가 정당한 이익을 근거로 처리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후통제권을 통해 추가적인 보호를 받을 여지도 있다. 결론적으로, AI 시대를 맞아 경직된 동의 중심의 규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정당한 이익’을 주된 개인정보 처리 근거로 적극 활용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엄격한 이익형량을 기반으로 한 ‘정당한 이익’의 활용은 기업에게는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AI 기술 혁신을 이룰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고, 정보주체에게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권리 보호를 제공하는 균형점이 될 수 있다. AI가 더 이상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된 이 시점에, 날이 갈 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하여서는 기존 법체계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해석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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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칼럼⑫] 인공지능 대전환에 따른 '개인정보 보호법'의 변화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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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칼럼⑧] AI 대전환과 개인정보 국외 이전, ‘신뢰 기반 체계 구축으로’
[기획 칼럼⑥] 개인정보를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변화가 필요하다
[기획 칼럼⑤] 인공지능 시대, 정보보호와 개인정보보호의 균형 있는 발전 전략
[기획 칼럼③] 공개된 정보 활용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AI 학습데이터 물꼬를 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