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의사 법적 책임 완화 추진···환자들 "특권·불안"


법 발의 전제 '의료분쟁 개선 공청회'
의협 "과실치사상죄, 고의·중과실에만"
환자·시민 "의사 특권, 책임감 낮춰" 반발

8일 국회와 정부가 필수의료 기피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의료사고 시 의사들 사법 책임 완화 관련 공청회를 열었다. 사진은 2024년 9월 15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장윤석 기자

[더팩트ㅣ이준영 기자] 국회와 정부가 의료사고 때 의사들의 법적 책임 완화 추진을 본격화했다. '사법 리스크로 의사들이 필수과를 기피하고 있다며 책임을 낮춰야 국민과 환자들에게도 이롭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환자들 권익 보호가 더 어려워지며 의사 직종에만 주는 사법적 특권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8일 의료계와 여야, 보건복지부는 '의료분쟁 관련 법·제도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대한의사협회,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 주최다. 이번 공청회는 의사들이 요구하는 사법 책임 완화를 담은 법안 발의를 전제로 열렸다.

의사들은 의료사고에 따른 사법 위험성이 커 필수의료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법적 책임 감면을 십여년 전부터 요구해왔다. 필수의료는 의료과목 중 내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국민 생명과 직결된 분야다.

지난 8월 26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국민중심 의료개혁 추진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레지던트 1년차 충원율 경우 필수의료인 소아청소년과는 26.2%, 심장혈관흉부외과는 38.1%에 그쳤다. 반면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등 인기과는 100% 충원율을 기록했다.

이날 공청회에서도 김강현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 의료사법제도개선위원회 위원은 "의사들이 안심하고 성실하게 진료에 임할 수 있도록 의료행위의 특수성과 불확실성을 감안한 형사책임 기준을 정하고, 업무상과실치사상죄 적용은 고의 또는 중대한 주의의무 위반에 한정해야 한다"며 "의료사고 조사 제도를 적절히 수립해 형사책임 중심에서 재발 예방 및 환자안전 중심으로 제도를 운영해 의료분쟁의 사후 해결보다 예방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여당도 필수과 기피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필수의료 경우 의료사고 시 사법 책임을 줄여야 한다는 의사 주장에 동의하면서 관련 입법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환자들은 현재도 의료사고 시 의사 과실 입증책임을 환자가 해야하는 상황에서 형사 처벌까지 감면하면 환자 권익 보호가 어렵고 의사 직군에만 특권을 주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현재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의사가 아닌 환자가 의료인 과실이 있는지, 의료행위와 의료사고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증거를 찾아 소송 과정에서 증명해야 한다. 마취된 채 밀폐된 수술실에서 수술 받고 전문 지식이 없는 환자와 가족이 의료사고에 대한 의사 책임을 증명해야 기소할 수 있고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김태현 한국루게릭연맹회 회장은 "의사의 의료사고 형사책임을 감면하면 사법적 특권을 주는 것이라 부적절하다"며 "특히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만큼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 하는데 처벌을 줄이면 책임감이 낮아지는 문제가 있다. 중증환자들 경우 불안해진다"고 언급했다.

8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의료분쟁 관련 법·제도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의료계와 정부여당은 의료사고 시 의사 사법 책임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환자들은 현재도 의료사고 시 의사 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환자가 해야하는 상황에서 형사처벌까지 감면하면 환자 권익 보호와 의사 직군에 대한 특혜라며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

송기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보건의료위원장도 "의사들은 우리나라 사법리스크가 과도하다고 주장했지만 정부가 확인한 결과 달랐다"며 "그럼에도 정부 여당이 환자들과 국민들 의견을 수렴하는 제대로 된 공론화 없이 의사들 주장에 동조해 의사 사법 부담을 낮추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정부가 의료사고 형사처벌 리스크에 관한 의료계 주장을 검증하기 진행한 '국민중심 의료개혁 추진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의료사고로 형사재판에 넘겨져 유·무죄 판결을 받은 의사는 연평균 약 38명이다. 이는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원이 2010∼2019년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된 의사 수가 연평균 752명이라고 분석했던 것과 차이가 크다. 정부는 약식 기소 등을 포함해도 연간 의료사고 기소 건수를 최대 70건으로 추정했다.

또한 필수의료 과목보다 인기과인 성형외과와 정형외과에서 기소돼 1심 선고가 나온 것이 많았다. 재판에 넘겨진 192명 1심 선고 내용을 보면 진료 과목은 정형외과(15.6%), 성형외과(15.1%)가 가장 많았다. 이어 내과(10.9%), 신경외과·치과(각 6.3%), 산부인과(5.7%), 응급의학과·마취통증의학과(각 4.7%), 소아청소년과(3.6%), 외과(3.1%) 순이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필수과 기피 현상을 막기 위해 일부 의원실에서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를 우려하는 환자들 입장도 있다. 공론화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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