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정인지 기자] 최근 일본인 가라사와 다카히로 변호사를 사칭한 테러 협박이 이어지면서 일본에서 발생한 동일 수법 범죄에 관심이 모아진다. 10년 전 일본 극우 성향 커뮤니티에서 촉발됐던 테러 협박은 2년 전 모방범죄로 이어졌다.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거나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는 등 법·사회적 제재를 받았다.
7일 일본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본에서 가라사와 변호사 사칭 테러 협박은 지난 2015년과 2023년 발생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나타난 수법과 마찬가지로 시청이나 학교, 지자체 등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내용의 팩스를 보내는 형태였다.
가라사와 변호사는 지난 2012년 3월 극우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에 개인정보가 공개돼 괴롭힘을 당하던 고등학생의 사건을 맡았다. 가라사와 변호사는 학생을 대신해 이용자들에게 게시글 삭제를 요청했다가 사이버 테러의 대상이 됐다.
이 커뮤니티에는 가라사와 변호사 살해 예고글이 빈번하게 올라왔다. 특히 커뮤니티 이용자 A 씨는 지난 2015년 5월부터 11월까지 가라사와 변호사가 소속된 사무실 게시판에 사망 통지서를 보내고 사무실 전광판을 훔쳤다. 급기야 가라사와 변호사 명의로 시청에 폭탄 테러를 예고했다. 일본 경시청에 붙잡힌 A 씨는 자신을 '항심교'라고 소개했다. 항심교는 종교적 성격은 없으며, 변호사를 비방하기 위해 만들어낸 표현이다.
A 씨는 업무방해와 강력협박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 씨는 지난 2016년 9월 도쿄지법에서 열린 공판에서 "변호사를 장난감으로 생각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A 씨는 같은해 10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인터넷상에서 다수의 이용자가 변호사에게 비방을 반복하는 상황에서 일련의 범죄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가라사와 변호사 사칭 테러 예고는 8년 뒤인 지난 2023년 또 발생했다. 일본 경시청은 대학원생 B 씨와 무직 C 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해 수사했다.
이들은 지난 2023년 1~5월 전국의 학교와 지자체, 기업에 약 30만장의 팩스를 보낸 혐의를 받는다. 인터넷 팩스 전송 서비스를 이용해 '도쿄 음악대학에 고출력 폭탄 334개를 설치했다. 지정된 시간까지 돈을 이체하지 않으면 폭탄이 터진다'는 내용의 팩스를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 과정에서 이들은 모두 항심교라고 진술했으며, A 씨와 같은 극우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만나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쿄지법은 지난해 6월 이들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B 씨는 학교에서도 퇴학 처분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지난 2023년 8월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에서 이어지는 가라사와 변호사 사칭 폭발물 협박 역시 일본 사례에 대한 모방범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실제 테러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모방범죄에 가까우나, 실제 테러까지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의 행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일본 사건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 모종의 피해 경험이 있거나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벌이는 일종의 '복수극'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현재 일본 변호사 사칭 테러 협박 총 48건을 병합 수사하고 있다. 이 중 일부는 동일인의 소행으로 보고 일본과 국제 공조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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