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정소양 기자] 서울 서초구가 서울시 자치구 중 처음으로 건축 내부기준을 전면 손질했다. 그동안 관행처럼 적용돼온 권장사항과 내부방침이 사실상 '숨은 규제' 역할을 해왔다는 지적에 따라, 자율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10일 서초구에 따르면 구는 서울시 자치구 중 처음으로 건축 관련 내부기준을 전면 정비하고, 지난 9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그간 행정 지침의 성격으로 운영되던 자치구 단위의 '권장사항'이나 '내부방침'이 실제 설계·허가 과정에서 사실상 규제로 작용해왔다는 현장의 지적을 수용한 결과다. 서초구는 이번 조치를 통해 민간의 설계 자율성을 회복하고, 민원 대응과 행정 효율성을 동시에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설계자 불안 해소"…기준 정비 배경은
서초구가 내부기준 정비에 나선 배경에는 건축 실무자들이 느끼는 혼란과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다. 자치구별로 자체 운용해 온 권장사항들이 사실상 ‘지켜야 할 규정’처럼 작용하면서, 설계 단계에서 부담이 컸다는 것이다.
서초구 관계자는 "서울 내 일부 자치구는 지역이나 건축 형태에 따라 내부 기준을 운영하고 있지만, 구는 법에 지장이 없는 범위라면 내부 기준을 과감히 없애보자는 판단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코로나19 시기에 등장했던 '언택트 택배박스(무인택배함)' 설치 권장 기준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구 관계자는 "주상복합이나 오피스텔에 설치를 권고했지만, 법적 의무가 아니다보니 실효성이 떨어졌고, 제재도 어려웠다"며 "이처럼 형식적으로만 남은 기준들을 이번에 정리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축 시장의 변화도 기준 정비를 앞당겼다. 구 관계자는 "2021년과 2022년을 지나면서 부동산 경기가 침체됐고, 실제 해당 기준이 적용되는 민간 건축물 자체도 크게 줄었다"며 "서울시 전반의 규제 완화 흐름에 맞춰 현장 여건에 맞는 기준 정리가 필요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자치구 내부 방침이 권장사항인데도, 설계자 입장에서는 '지키지 않으면 허가에 불이익이 있을까'하는 부담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정비에 대해 구는 이같은 불확실성과 불안 요소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 정비 핵심은 '폐지·통합·절차 간소화'
이번 정비는 △자체 건축심의 기준 폐지 △내부 기준 통합·개정 △건축위원회 심의대상 조정 등 3가지 방향으로 추진됐다.
우선, 기존 '서초구 건축심의 기준'을 전면 폐지했다. 이 기준은 다락 설치, 외벽 재료, 층수 완화 등 세부 항목까지 규정해 실무자와 설계자의 창의적인 계획 수립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기본적인 안전과 환경 요소는 상위 기준인 '서울특별시 건축물 심의기준'에 따라 관리하고, 중복되거나 과도한 자치구 기준은 과감히 없앴다.
'서초구 건축 하나로 기준'과 '건축허가 안내문'도 하나의 기준으로 통합하고 전면 개정했다. 법령 개정사항과 현장 실무 적용 가능성을 반영해 임의규제 성격의 조항을 삭제하거나 수정했으며, 언택트 택배함처럼 더 이상 실효성이 없는 항목은 제외했다.
기존 건축위원회 심의 대상 중 '도시형생활주택 층수 완화' 건은 소규모 개발의 경우 하위 심의기구인 건축계획전문위원회에서 처리하도록 변경했다. 이를 통해 행정 절차를 단축하고, 허가 지연에 따른 민간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민원 해소·착공 속도 '긍정 효과 기대'
서초구는 이번 개정으로 민원 처리 속도가 빨라지고, 설계 자유도도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소규모 민간개발과 건축업계 전반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다. 특히 불필요한 내부 기준으로 인한 혼란과 불만이 해소되면서 민원인 만족도도 높아질 전망이다.
설계와 심의 절차의 간소화는 개발 일정 단축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내부기준과 심의 기준 정비는 건축계획 단계에서의 행정 부담을 덜어주며, 착공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전성수 서초구청장은 "이번 건축기준 정비는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실용행정의 실현"이라며 "앞으로도 현장의 눈높이에 맞는 합리적 기준을 마련해 민생경제에 활력을 더하겠다"고 밝혔다.
개정된 '서초구 건축 하나로 기준(개정판)'은 서초구청 홈페이지에서 열람 가능하며, 구는 설계자 대상 설명회와 간담회를 통해 정비 내용을 공유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