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준영 기자] 이재명 정부의 보건복지부 1, 2차관 인사를 두고 시민사회가 철회를 요구하며 반발이 거세다. 국민주권 정부라며 적정 노후소득 보장 등 안전망 확대, 공공의료 강화 등 기치를 내걸었지만 이와 어긋난 행적을 보인 인사들을 차관으로 임명했다며 국정 방향에 의문을 제기했다.
2일 이스란 1차관과 이형훈 2차관 임명 철회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이스란 차관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주 이유는 국민연금기금 운용위원회에서 가입자 대표성과 민주성을 훼손하고, 사회적 합의인 공론화위원회 결론과 어긋난 방향으로 국민연금 개혁 정부안을 만드는 데 주도했다는 것이다. 복지부 연금정책관과 사회복지정책실장 등을 지낸 이 차관은 국민연금 개혁안과 관련 정책을 만드는 데 깊이 관여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이듬해인 2023년 3월 열린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복지부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구성을 가입자 추천을 줄이는 반면 금융시장 전문가 3인을 뽑는 개정안을 심의 의결했다. 복지부는 당시 이 안건에 거칠게 반발한 민주노총 추천위원을 품위 손상 사유로 해촉했다. 이후 민주노총이 복지부에 새 위원 후보를 여러 차례 추천했지만 복지부가 위촉하지 않으면서 노동계 몫 한자리가 2년 넘게 공석이었다.
그러다 지난 4월 17일 복지부는 민주노총 측 위원을 2년 만에 새로 위촉했다. 시민단체들과 노동계는 2년 넘게 이어지던 노동계 추천 위원 배제가 4월 4일 윤 전 대통령이 파면돼서야 바로잡힌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이스란 차관은 국민연금기금 운용위원회의 민주노총 추천 위원 일방적 해촉 후 2년 넘게 가입자 추천 위원을 공석으로 두며 가입자 대표성을 떨어뜨렸다. 자본과 권력이 원하는 금융이해당사자 위주로 국민연금기금 지배구조를 바꾸려는 법적 시도가 막히자 편법적으로 행정부가 이를 관철하려 했다"며 "그러다 윤 대통령이 파면돼서야 민주노총 새 위원을 위촉했다. 기금운용위 거번넌스 민주성을 망가뜨린 고위 관료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이스란 차관이 사회적 합의와 배치된 국민연금 정부 개혁안을 주도한 점도 문제 삼고 있다.
지난해 9월 복지부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2%로 높이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했다. 정부안에는 저출산 고령화에 따라 연금 수급액을 자동 삭감하는 자동조정장치 도입, 나이가 많을수록 보험료를 더 빨리 올리는 세대별 보험료 차등 인상도 담겼다.
하지만 이는 앞서 진행한 사회적 합의 결과와 달랐다. 21대 국회 연금특위 산하 공론화위원회가 네 차례 숙의 토론회를 거쳐 발표한 최종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492명 시민대표단 가운데 56%가 소득대체율 50%, 보험료율 13%로 높이는 안을 택했다. 자동조정장치는 공론화 과정에서 정식 의제로도 채택되지 않았다.
참여연대 등 30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연금개혁 과정에서 공적연금의 보장성과 시민의 뜻을 후퇴시키고,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고 청년과 노인을 갈라치기 하는 위험한 개악안을 내밀며 국민연금은 물론 민주주의와 세대 간 연대 등 사회적 가치를 훼손한 이를 이재명 대통령이 국가 사회복지 중요 정책을 다루는 복지부 1차관에 임명한 것은 것은 인사 참사"라며 "‘위기 속에서 서로를 지키는 든든한 사회 안전망 마련’이라는 대통령 국정 철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에 앞장선 이가 과연 국정철학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사회적 합의에 어긋나게 연금 개혁을 추진한 이스란 차관 임명이 새 정부의 연금 추가 개혁 미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 국민 누구나 적정 노후소득을 보장받는 공적 연금제도 개혁에 나서겠다고 명시했지만 소득대체율 추가 인상이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을 담지 않아 미흡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시민사회와 일부 전문가들은 새 정부가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 개혁에 소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을 거론하며 소득대체율 50% 상향, 출산크레딧 확대,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사업장 가입자 전환을 통한 사각지대 해소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는 모두 이 대통령 공약에 없는 것으로 추가 연금 개혁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 지점이다.
오종헌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 위원장은 "이스란 차관 인사는 국민 노후 안정 보다 정부 재정 절감 등 정권 안위에 초점을 맞추려는 신호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역시 고령화와 노인 빈곤이 심각한 상황에서 빈곤층 의료비 부담을 키우는 의료급여 정률제 추진에 이 차관이 책임자라며 임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빈곤률이 가장 심각하다.
이형훈 복지부 2차관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이형훈 차관은 박근혜 정부 시절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으로 재직하면서 영리병원, 민영보험 활성화, 원격의료, 신의료기술 및 재생의료 규제완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보건의료 민영화 정책을 추진했다"며 "이후에도 보건산업정책을 총괄하면서 개인건강정보 민영화에도 앞장선 바 있다. 이재명 정부가 의료민영화 추진에 앞장서겠다는 의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임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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