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서 가장 빨리 늙는 한국…'인구교육'에 쏠리는 관심


복지부, 2006년부터 인구교육 지원사업 실시
저출산·고령화에 치중…교육체계 미흡도 한계

2024년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5명이다. 2025년 을사년 첫날인 1일 새벽 엄마 구슬기 씨와 아빠 강우석 씨의 아들 딩굴이(태명)가 경기 고양 일산차병원에서 탄생을 알리고 있다. /일산=임영무 기자

[더팩트ㅣ조채원 기자] #서울의 한 국제중학교는 일본어 수업 시간에서 '인구교육'의 일환으로 노노(老老)돌봄에 대해 발표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노노돌봄은 건강한 노인이 도움이 필요한 다른 노인을 지원하는 활동이다. 노인 간 상호 돌봄으로 고령화로 인한 사회 비용 부담을 줄이고, 노인의 사회 참여도를 높이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학생들은 세계에서 고령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일본이 맞은 돌봄 공백 문제, 노노돌봄 정책적 지원 현황, 일본 사례에서 한국이 배워야 할 점 등을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전라도 전주시 한 대학 부설유치원에서는 가족의 소중함, 고령자 이해를 위한 인구교육 놀이 사례로 '할아버지, 할머니 멋진 점 찾아보기'를 제시했다. 아이가 조부모를 인터뷰해 은퇴 전 했던 일 등을 묻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자랑할만 한 점을 소개하는 수업이다. 참여 학부모는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능력 있는 구성원으로 인정했다는 부분에서 의미 있었다"며 "가족의 마음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평가했다.

합계출산율 0.75명. 아이를 낳지 않는 한국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2024년 기준 전국 시·군·구 228개 중 절반이 넘는 130개 지역이 이미 소멸위험 지역이고, 지난해 12월엔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45년에는 일본을 앞지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경제 둔화, 복지 지출 증가, 세대 갈등, 지역 소멸 등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인구 불균형이 심화하는 현실에 개인과 사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인구구성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인구교육'이 주목받는 이유다.

◆복지부, 2006년 시작…학교선 사회·지리·도덕에 통합

정부는 그동안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극복을 위해 다양한 정책 지원과 함께, 결혼·출산·양육 등에 대한 국민 인식 개선에도 힘써왔다. 그 중 하나는 보건복지부가 실시해 온 인구교육 추진 지원 사업이다. 인구교육 지원 사업은 2006년부터 2023년까지는 저출산 고령사회 대비 국민인식개선 사업과 별도로 실시되다가 지난해부터 저출산 고령사회 대비 세부사업으로 편입됐다. 최근 5년 집행돼 온 예산은 9억여 원 정도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2023년 인구교육 연구·선도학교 연구 실적보고서에 수록된 인구교육 사례. / 보건복지부 제공

복지부는 인구교육을 '인구규모와 구조 및 분포와 인구변동이 사회는 물론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인구관련 가치관과 태도를 형성해 미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지속적인 사회발전을 도모하는 모든 형태의 교육활동'으로 소개한다. 인구 교육 법적 근거는 2012년 법령 개정에서 규정된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7조의2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이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결혼·출산·가족생활에 대한 합리적인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인구교육을 활성화하고 이에 필요한 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법령이 인구교육의 목적을 '저출산·고령화 문제 이해'와 '가족생활에 대한 합리적 가치관 형성'에 두다 보니 인구교육은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하고 엄마, 아빠가 있는 가족은 행복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가치관 교육'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인구교육은 결혼·출산·가족생활 뿐 아니라 노인 복지, 세대 갈등, 생명 존중, 양성평등, 지방소멸, 다문화 등도 포괄적으로 다룬다. 인구교육 유관기관인 인구와정책연구원은 홈페이지에 "인구 교육은 가치관을 주입하기보다는 다양한 가치관을 스스로 정립할 수 있도록 다양한 관점을 함양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며 "가족·친구·사회를 읽을 수 있는 눈을 키우고 본인과 본인이 살아갈 한국 사회의 미래 변화를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교육"이라고 소개한다.​

공교육에서 인구 교육은 독립된 정규 과목이 아닌 기존 사회·지리·도덕 과목에 통합해 실시돼왔다. 사회·지리에서 인구 분포, 고령화, 도시화 등 인구 구조와 사회 변화를 다루고 도덕·윤리 과목에서는 가족, 공동체, 책임, 생명 존중 등 인구와 연관된 가치 교육이 포함되는 식이다. 복지부 인구교육사업은 △ 인구위기 대응 역량교육 △ 인구교육 전문인력 양성 △ 인구교육 콘텐츠 개발 및 지원 세 가지로 분류된다. 학교인구교육은 △ 유치원·초·중·고 학생 대상 인구교육 연구·선도 학교 운영 △대학생과 교원 대상 대학의 인구교육강좌 개설 지원 △인구교육 교사 수업경진대회 등 3개의 세부사업으로 구분해 추진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저출산 문제가 부각된 것은 2000년대 초중반임에도 중·고등학교용 인구 교육 인정 교과서 개발과 승인이 이뤄진 것은 2023년으로 비교적 최근이다. 사진은 서울의 한 고등학교./더팩트 DB

◆ 인식 바뀌면 아이 낳을까…인구교육 법령 전면 수정 필요성도

복지부는 '2025년 인구위기 대응 인구교육 추진지원 사업 계획' 보고서에서 주요 추진 성과로 '교육 효과'를 꼽았다. 연구·선도학교 지정·운영을 통해 학생들의 인구 문제에 이해를 높이고 긍정적 가치관을 확산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사전·사후설문조사를 통해 교육의 효과 (사전 67.35점→사후 80.52점)을 검증했다"고 언급했다. 설문 문항은 '인구교육은 가족의 형태를 이해하고 남성·여성의 성평등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미래 나의 직업을 선택할 때 인구변화를 고려할 수 있다' 등으로, 5점 척도(매우 그렇다 5점)로 측정된다. 학생들은 교육을 받은 뒤 해당 문항에서 더 높은 점수를 기록해, 인구교육이 인식 변화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여전히 인구교육 주제가 저출산·고령화에 치중돼 있다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관련 법령이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한 이해도와 가치관의 변화가 결혼과 출산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견해에 기초하고 있어서다. 한국보건복지인재원이 발간한 '공공 및 민간 종사자 인구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체계 수립 및 표준교재 개발연구'는 "결혼·출산 행동은 개인 수준의 삶의 맥락 내에서 결정된다는 것이 인구사회학적 연구의 공통된 결과"라며 "국민들의 필요에 대한 인식보다는 출산율 목표를 위한 목적만이 부각돼있고, 개인이 저출산 현상에 책임이 있는 듯한 메시지를 전달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구 교육은 출산의 가치를 강요하거나 출산 장려를 궁극적 목표로 삼기보다는 삶의 질과 개인의 의미있는 삶의 포괄하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인구교육 관련 법령의 전면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인구 변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 비해 인구교육과정 개발과 체계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국 사회의 저출산 문제가 부각된 것은 2000년대 초중반인데도 중·고등학교용 '인구 교육' 인정 교과서 개발과 승인이 이뤄진 것은 2023년으로 비교적 최근이다. 생애 주기 별로 교육 내용을 달리해야 하지만 내용의 연속성이 부족하고, 유·초등 인구교육을 위한 공통 교재는 없는 게 현실이다. 보고서는 "인구교육의 사업 개선 방안을 위해 학교인구교육과 사회인구교육, 그리고 인프라 확충 사업을 총괄 관리할 수 있는 인구교육 전담기구 신설 또는 지정할 수 있는 근거 법령 마련이 필요하다"며 "위정자들이 교육과정 속 인구교육이 국가의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필수 요소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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