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여권 영문명 표기 결정은 행복추구권…가급적 존중해야"

여권 발급시 영문명이 로마자 표기법과 다르더라도 실제로 있는 외국식 이름과 유사한 발음이라면 사용해도 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남용희 기자

[더팩트ㅣ선은양 기자] 여권 영문이름 표기 변경 요청은 개인의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에 따라 최대한 존중받아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강재원 부장판사)는 여권 로마자 성명을 고쳐달라며 한 아동과 부모가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낸 여권 로마자 성명 변경 불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2020년생 자녀를 둔 한 부모는 2023년 8월 자녀의 여권을 신청하며 자녀의 이름을 'TARYN'으로 표기했다. 여권 발급 업무를 수행한 수원시는 'TARYN'이 로마자 표기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아동의 로마자 성명을 'TAERYN'으로 하고 여권을 발급했다.

부모가 발급 다음 달 원래 신청한 'TARYN'으로 고쳐달라고 요청했지만 수원시는 여권법 시행령에 따른 변경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부모는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TARYN'을 놓고 "영어권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이름으로서 실제 발음에 가깝다"며 "외국식 이름을 로마자로 표기할 수 있는데도 변경 신청을 거부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였다. 우선 변경 신청이 여권 로마자 성명 변경이 가능한 예외 사유 중 하나인 '여권 사용 전 변경 요청'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아동이 여권을 실제로 사용하기 전 변경 신청을 했기 때문에 여권법 시행령 제3조의2 제1항 제7호에 따른 변경 사유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 조항은 '최초 발급한 여권의 사용 전에 영문성명을 변경하려는 경우' 정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또 'TARYN'은 실재하는 외국식 이름이고, 영미권 내에서도 발음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외교부가 이를 막을 만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다"며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은 어디까지나 구속력 없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라고도 했다.

자신의 이름을 여권에 로마자로 어떻게 표기할지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자기 발현, 개인의 자율에 근거한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의 한 영역이며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공익을 중대하게 훼손하지 않는 한 가급적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아직 나이 어린 아동이 여권의 로마자 성명으로 사회생활상 불편과 어려움, 정신적 혼란 등을 감수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며 "아동이 입을 불이익에 비해 우월하고 중대한 공익이 인정된다고도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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