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윤경 기자] 박선영 진실화해위원회(진화위) 신임 위원장의 첫 회의에서 야당 추천 위원들이 박 위원장의 언행에 사과를 요구했지만 대답이 없자 회의 도중 퇴장하는 일이 벌어졌다.
진화위는 17일 서울 종로구 진화위 대회의실에서 제 93차 전체위원회를 열었다. 이날 야당 추천 위원들은 '비상계엄을 두둔하는 공직자는 필요없다', '주권자를 놀라게 한 비상계엄 비호하는 공직자가 어디 있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회의에 참석해 개회 전부터 설전이 오갔다.
이상희 비상임위원은 "지난 3일 헌정 유린을 목격하고도 진화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렇게 회의 자리에 앉아서 안건을 심의하는 게 맞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며 "진화위는 이런 인권 유린과 폭력, 학살 등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구성된 조직"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의 아픔을 짓밟고 그들의 목소리를 탄압하려는 사람이 어찌 위원장 자리에 있을 수 있는지 묻고 싶다"며 "박선영 위원장은 피해자들과 국민들에게 사과를 해야 된다. 더불어 사퇴를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여당 추천 위원인 김웅기 비상임위원은 "현실 정치에서 일어나는 부분은 위원회의 법적인 업무 소관은 아니다"라며 "현실 정치에서 발언을 하고 싶다면 국회에서, 거리에서 하라"고 했다. 거듭 야당 추천 위원들이 12·3 비상계엄 사태와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를 요청해도 박 위원장이 대답하지 않자 오동석·이상훈·이상희·허상수 위원은 "이런 상태로는 참여하기 곤란하다"며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이후 이상훈 상임위원은 "진화위는 과거에 신청된 사건의 진실 규명 뿐 아니라 그 과거사에 관련된 사건을 처리하면서 전체 국민의 화해와 통합을 이뤄내는 위원회"라며 "단지 과거 행위에 대한 판단을 하기 위해 현재 문제를 등한시 여기고 일방적으로 회의 진행하는 것을 보며 진화위 설립 취지에 맞는 위원장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더불어 "국가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과도 안 하는 상황에서 위원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냥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그분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임무에도 위배된다"고 덧붙였다.
위원들은 다음 주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박 위원장의 임명 취소 신청서와 현안 질의 등 국회에 관심을 촉구하는 여러 요청서를 발송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박 위원장의 행동에 따라 다음 회의 참석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박 위원장은 지난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SNS를 통해 "파렴치한 범죄자들 처리를 못 했기 때문에 오늘날 나라가 이 모양"이라며 "국기를 문란하게 하는 자들이 판치는 대한민국, 청소 좀 하고 살자"는 글을 올렸다.
또 지난 10일 취임식날 아침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국가의 독립조사위원장직 취임을 거부하고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는 것 자체라 '헌정유린'"이라며 "탄핵이 부결된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은 윤석열"이라고 해 논란을 샀다.
이날 오전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도 진화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계엄을 동의하고 오히려 자신의 임명을 막는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향해 ‘헌정유린’이라는 막말을 쏟아붓는 박선영은 진화위에 부적합한 인물이며 내란 동조자"라며 박 위원장의 퇴진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