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소현 기자] 학원 강사가 며칠만 근무한 뒤 '잠수'를 타는 수법으로 해고를 유도하고, 해고 통보를 받으면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겠다며 합의금을 요구해온 정황이 포착됐다. 노동법을 악용하고 있지만 섣불리 제도를 개선하면 되려 노동자 권리가 위축될 우려 때문에 법을 숙지하고 대처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29일 노동계에 따르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는 지난달 7일 30대 학원 강사 A 씨가 50대 학원장 B 씨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에서 A 씨의 재심 신청을 기각했다. 중노위는 "이 해고는 사회통념상 근로계약 관계를 계속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존재하고, 서면으로 적법한 해고 통지를 했으므로 정당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정했다.
중노위 판정서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30년째 학원을 운영 중인 B 씨는 지난해 9월11일 A 씨를 초·중등 파트 영어 강사로 채용했다. A 씨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다수의 학원 강사, 과외 경험을 갖고 있었다. 시범강의도 잘해 B 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A 씨를 채용했다.
그러나 열흘 정도 지나 문제가 발생했다.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중간고사를 하루 앞둔 보강수업을 하기로 돼 있던 A 씨가 갑자기 나올 수 없다고 통보했다. 수업 시작 불과 20분을 남기고 A 씨는 B 씨에게 "몸 상태가 좋지 않다. 근무가 어려울 것 같다"고 문자를 보냈다. 연락도 두절됐다.
학부모들은 갑작스런 결강에 항의했고, 일부 학생은 학원을 관뒀다. B 씨는 그날 A 씨에게 해고통지서를 보냈다.
다음 날 A 씨는 출근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학원에 도착했다. B 씨는 A 씨와 면담에서 "근로할 의사가 있으면 강의실에 가 수업을 하라"고 했다. 그러나 A 씨는 근로할 의사가 있다면서도 수업을 하지 않고 학원을 떠났다고 한다.
이후 A 씨는 부당해고로 노동위원회에 신고하겠다며 합의금을 요구했다. A 씨가 신고하지 않는 대가로 요구한 금액은 240만원이다. B 씨는 합의금을 주지 않았고 A 씨는 지난해 12월22일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하지만 중노위의 최종 판단으로 B 씨는 A 씨를 복직시키지도, A 씨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게 됐다.
B 씨는 "A 씨가 근로 의사가 없다고 판단해 최종 해고했다"며 "면담 당시 계속해서 '해고 당한 게 맞냐'고 묻길래 찝찝해서 대답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합의금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B 씨는 A 씨에게 당한 학원장이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많은 학원장이 B 씨와 비슷한 방법으로 A 씨에게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일부 학원장은 해고 통지를 서면으로 하지 않아 합의금 명목으로 A 씨에게 몇 백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학원장 C 씨는 "첫 수업을 본 뒤 채용하기로 약속했는데 (수업이) 별로여서 채용하지 않겠다고 하니 (시범 수업도 수업이라며) 채용계약서를 쓰지 않고 채용했다고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내겠다고 했다"며 "합의금으로 320만원을 줬다. 1시간 일하고 한달치 월급을 가져간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A 씨는 "(중노위 판정이) 납득이 안 간다"며 "거짓말도 한둘이 아닌데 (중노위는) 제3자니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자꾸 이런 식으로 되는 게 너무 억울하다"고 해명했다.
◆노동법 잘 모르는 영세 업체 타깃…5년 동안 부당해고 구제신청만 68번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실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 해에 지방노동위원회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3회 이상 한 노동자는 2021년 80명, 2022년 113명, 2023년 132명으로 매년 증가했다. 올해도 183명이 1~9월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3회 이상 했다. 특히 한 사람이 지난 5년 동안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68번 한 사례도 있었다. 30건 이상 한 사례도 4명에 달했다.
부당해고가 인정되면 분쟁 기간 일하지 않고 월급을 받을 수 있다. B 씨의 경우에도 해고가 '부당해고'로 인정되면 A 씨에게 3900만원 가량을 지급해야 했다. 근로기준법 30조는 '노동위원회가 구제명령을 할 때 근로자가 원직복직을 원하지 않으면 노동자가 해고기간 동안 근로를 제공했더라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상당액 이상의 금품을 지급하도록 명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당시 A 씨의 월급은 330만원이었다.
이 때문에 일부 노동자가 사용자를 상대로 해고를 유도하고 사소한 잘못을 빌미로 월급과 합의금을 뜯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영세 업체들이 타깃이 된다. 박원철 공인노무사는 "대형 업체는 노무사의 자문을 받지만 영세 업체일수록 체계적인 노무 관리가 어렵다"며 "노동법을 악용하는 상습범들은 취약한 사장님들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사용자의 법 지식이나 사용자가 감정적으로 다스리기 힘든 상황을 유도한 다음 노동법을 악용한다"며 "부당해고가 인정되면 지노위, 중노위 절차 진행이 끝날 때까지 일하지 못했던 기간이 모두 사용자 귀책이 돼 (사용자는) 임금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일부 노동자가 노동법을 악용한다고 해서 섣불리 제도를 개선하기는 어렵다. 박 노무사는 "근로자 보호가 노동법 취지이기 때문에 개선책 마련은 어렵다"라며 "사용자가 노동법을 잘 숙지해 사전에 (빌미 잡힐)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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