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황지향 기자]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유족들은 인정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울부짖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권성수 부장판사)는 17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류미진 전 서울청 인사교육과장과 112 상황실 간부도 무죄로 판단했다. 류 전 과장은 참사 당일 서울청 상황관리관 당직 근무를 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은 친구, 연인, 가족들과 이태원을 방문했던 평범한 시민들이고 국가가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잘 수행할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즐겁게 지내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것이란 믿음이 있었을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이런 믿음이 처참히 부서졌고 생명을 잃은 사망자만 158명, 상해를 입은 피해자가 312명에 이르는 대규모 사회적 재난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을 잃고 평생 믿었던 신까지 버렸다는 유가족의 결핍이나 현재의 트라우마 등을 살펴볼 때 유가족이나 생존 피해자들이 겪었을 고통을 짐작하기조차 쉽지 않고 재판부도 상당히 고통스럽고 아픈 부분이 있다"고 했다.
다만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의 성립은 서울경찰청 조직의 수장인 업무 담당자로서의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책임이 아니라 피고인들 개인의 개별적인 형사 책임 성립을 따질 수밖에 없고 형법이 정한 각 구성 요건 해당성에 관한 엄격한 증명을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피고인들의 업무상 과실이나 인과관계가 엄격하게 증명됐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며 "피고인들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봐서 무죄로 판단한다"고 했다.
김 전 청장은 지난 2022년 10월29일 서울 이태원에서 열린 핼러윈 축제 당시 대규모 인파 운집으로 안전사고 발생 위험성을 예견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아 158명을 숨지게 하고, 312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김 전 청장이 당시 적절한 경찰력을 배치하지 않고 지휘·감독도 소홀히 했다고 판단했다.
이날 무죄 판결에 유족들은 일제히 고함을 치며 오열했다. 일부는 재판부를 향해 "이건 아니다. 우리는 앞으로 누구를 믿고 사느냐"고 소리쳤고,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김 전 청장을 향해 "스스로 죄가 있다고 말하고 사과해라.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자리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유족들 대부분 재판이 끝나고도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일부는 재판을 마치고 법원을 빠져나가는 김 전 처차량을 둘러싸고 항의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오늘 선고 공판은 사법부의 정의를 밝히는 공판이 아니라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았다"며 "'문제는 있어 보이는데 죄는 없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어 "사법부가 이렇게 면죄부를 주기 시작한다면 공권력은 국민을 위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냐. 책임자들의 모든 책임을 낱낱이 밝히기 위해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고 밝혔다.
유족들의 법률 대리를 맡고 있는 백민 변호사는 "검찰이 얼마나 공소 유지를 충실하게 했는지도 의문이지만 법원까지 이태원 참사 책임 묻기에 소극적이어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검찰의 즉각적인 항소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부가 (참사 당시) 서울경찰청의 인적, 물적 소극적인 조치를 지적하면서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거의 중과실에 가까운 직무 방기가 있어야만 업무상 과실치사상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소극적인 판결을 한 것"이라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다루는 업무상 과실치상의 법리에 비춰도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서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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