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황지향 기자] 의료공백 장기화에 정부가 군의관들을 응급의료 현장에 파견한 가운데 군 복무 중인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군의관 공백으로 군대에서 다치거나 아파도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역 입대를 선택하는 의대생들 증가로 향후 군의관 인력 수급 차질도 우려되면서 의대 증원에 따른 파장이 군대까지 미치는 모양새다.
8일 온라인 커뮤니티 군인아들부모님카페(군화모)에는 "아들이 아플 때면 항생제를 먹어야 하는데 군의관들이 빠져나가면 누가 돌봐주고 약을 처방해줄거냐. 앞으로 날이 더 추워지면 걱정이 된다"는 한 부모의 글이 게재됐다.
자식을 군대 보낸 부모와 가족 등이 모인 또 다른 인터넷 카페에도 군대에서 다쳤는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훈련병부터 이병, 일병 등으로 군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을 둔 부모들은 일제히 '군의관 부재에 따른 군 의료체계 붕괴'를 걱정했다.
군의관은 군대의 의무 병과에 소속돼 의료인 업무를 수행하는 전문 사관 중 하나다. 육군 기준 일반의 또는 전문의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부대 의무실과 사단 의무대, 전·후방병원, 수도병원 등에서 근무하게 된다. 현재 2100~2400명의 군의관이 군 의료체계를 책임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직서를 내고 떠난 전공의들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정부가 지난 3월11일부터 병원에 파견한 군의관은 약 500명에 달한다. 정부는 지난 8일까지 군의관 248명을 파견했으며, 오는 9일부터는 추가로 250명을 파견할 계획이다. 2400명의 약 5분의 1에 달하는 군의관들이 군대를 떠나 의료현장에서 임시로 근무 중인 것이다.
부모들은 군의관이 없어 자녀가 제때 치료를 못 받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의대생 자녀를 둔 A 씨는 "아들을 군대에 보냈거나 보내야 하는 엄마들 사이에서 마치 폭동이 일어날 듯한 분위기"라며 "최근 훈련병 사망사건도 그렇고 언제든 아프고 다칠 수 있는 군에 군의관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둘째 아들의 입대를 앞두고 있다는 B 씨는 "군의관 차출 소식에 너무 불안하다"며 "국방부장관에게 메일을 보내야 할지, 훈련소에 전화라도 해서 군의관을 빼지 말아 달라고 애원이라도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전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응급실 군의관 배치, 군대 보낸 부모 마음에 돌덩이를 얹어 놓고 있다', '군대 특성상 외부 활동도 많고 힘쓰는 일, 다칠 일도 아플 일도 많은 집단생활인데 군의관 차출은 아니지 않나 싶다', '국방부에 항의 전화, 성명 등 해야 한다', '군인들은 치료도 못 받고 죽으라는 거냐' 등의 불만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향후 몇 년간 군의관 부족 문제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방부는 매년 약 700명의 군의관 인력 수급 계획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의대 증원에 반발해 학교를 떠난 의대생들이 군의관을 포기하고 현역 입대를 선택하면서 군의관 수급 부족 문제가 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달 23일 기준 전체 40개 의대 중 20개 의대에서 총 542명이 입대를 사유로 휴학을 신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115명이었던 지난해에 비해 급증한 수치다. 지난 2022년 군 휴학 의대생은 79명에 불과했다.
본과 2학년 의대생 자녀를 둔 C 씨는 "현재 매우 많은 학생이 입대하고 있다. 군의관보다 상대적으로 기간이 짧아 특히 삼수 이상을 한 나이 많은 학생들은 더욱 그렇다"며 "몇 년 후에는 군의관과 공중보건의(공보의)가 모자라 또 다른 의료대란이 올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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