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시형, 이윤경 기자]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가 10대 청소년까지 확산하면서 학교 현장에서 졸업앨범을 만들지 말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졸업앨범 속 사진이 무차별 유포될 경우 언제든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합성한 딥페이크 음란물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28일 온라인 커뮤니티 맘카페 등에는 졸업사진을 촬영하지 말자는 학부모들의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학부모는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공개된 사진첩이 필요 없는 시대"라며 "졸업사진 안 찍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다른 학부모도 "각자 본인사진, 단체사진 딱 한 장씩만 가졌으면 좋겠다"며 "별별 합성을 다 하는데 초고화질 사진을 나눠 갖는 건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졸업앨범 진짜 없애야겠다', '범죄에 이용될 수 있으니 학교에 건의해서 안 만들면 좋겠다' 등 글도 게재됐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초·중·고등학교까지 급속도로 번지면서 혹시나 내 자녀의 사진이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 졸업앨범 보이콧 움직임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이른바 '서울대 n번방' 사건도 동문들의 졸업사진을 합성해 딥페이크 음란물을 만들고 텔레그램에 유포한 범행이 발각돼 충격을 줬다.
교사들 역시 졸업앨범 속 사진이 딥페이크 성범죄 대상이 될 수 있어 졸업사진 촬영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한 현직 교사는 맘카페에 "제발 민원을 넣어 졸업앨범을 없애달라"며 "업무해본 경험으로 내 사진이 들어본 적 없는 지역 학교 입찰공고 앨범 샘플에 있더라. 교사든 학생이든 찍히는 순간 공공재가 된다. 교사도 찍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교사 A 씨는 "딥페이크 피해자들 중 교사들도 있지 않냐"며 "졸업사진이 범죄에 악용될 수도 있는데 사진을 못 찍는 시대도 아니고 굳이 찍을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교사 B 씨도 "딥페이크 피해 학교 지도를 봤는데 졸업앨범도 찍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수백 명의 학생들 사진이 고스란히 담긴 건데 졸업앨범을 찍는 것 자체에 대해 학교에 문제제기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SNS에는 피해 학교 지도도 공유됐다. 전날 개설된 '딥페이크 피해 학교 지도' 사이트에는 약 500곳의 위치가 표시돼있다. 딥페이크 긴급 실태조사를 진행 중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현재 300곳 정도 조사한 결과 40곳에서 실제 피해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일부 학교의 경우 이미 본인 의사에 따라 졸업사진 촬영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전교조는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의사를 물어 본인 사진이 들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경우 촬영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앨범을 제작하는 학교도 있다"고 설명했다. 교사 C 씨는 "초등학교 6학년, 중·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들끼리 협의해 교사들의 사진을 싣지 않고 앨범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다만 당장 졸업앨범 제작 취소를 결정하는 학교가 나오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전교조 관계자는 "졸업앨범의 경우 졸업앨범 제작위원회 등 학교 내부 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이견이 있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 D 씨는 "작년부터 졸업앨범 촬영을 하지 말자고 (학교에) 건의했는데 계약한 건수 때문에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 관계자는 "이번 딥페이크 사태로 아직까진 졸업앨범 문제가 거론되진 않고 있다"면서도 "개인정보 민감도가 굉장히 높아진 지금 시국에 사진 한 장이 어떤 식으로 활용될지 알 길이 없으니 우려가 많은 상황이라 겨울 졸업 시즌이 되면 졸업앨범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올텐데 웬만하면 졸업사진을 촬영하지 않는 쪽으로 논의가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앞서 교육부는 전날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딥페이크 음란물 피해 현황 파악에 나섰다. 경찰도 뒤늦게 이날부터 7개월간 각 시·도경찰청 사이버 성폭력수사팀을 중심으로 특별 집중단속을 실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