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출발합니다. 기원을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알기도 하고 의외의 즐거움을 찾기도 합니다. '우린 어디서 왔을까?' 오늘의 우리는 '지하철 역명 병기 사업'입니다. [편집자주]
[더팩트|이상빈 기자] 11억 1100만 원.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 소재 '하루플란트치과의원'이 올해 10월부터 수도권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 자신들의 이름을 3년간 붙이는 조건으로 내는 금액이다. 이 비용은 서울교통공사가 받는다.
지하철역에 기업명을 함께 붙이는 건 서울교통공사가 시행하는 '역명병기 유상판매 사업'이다. 이 사업은 2016년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재정난 해소를 위해 시작했다. 기관·기업으로부터 금전적인 대가를 받고 3년간 부역명을 달아주는 사업이다.
공개 입찰로 기존 지하철 역명에 부역명을 달고자 하는 기관·기업을 모집한다. 금액은 승차 인원, 유동 인구 등 기준으로 역마다 달리 책정한다. 대상은 지하철 1~8호선이다. 계약 기간은 3년이며 재입찰 없이 3년, 1회 연장할 수 있다.
참여 요건은 공서양속(공공의 질서와 선량한 풍속) 훼손 및 공사 이미지 저해 우려가 없고, 대상 역에서 1km 이내 위치한 기관 또는 기업이다. 부역명은 역사 외부(2종), 대합실(1종), 승강장(2종), 전동차 내(3종) 사인물과 안내방송에서 표출한다.
사업 출범 당시 2호선 방배(백석예술대), 을지로입구(IBK기업은행), 3호선 홍제(서울문화예술대), 압구정(현대백화점), 4호선 명동(정화예술대), 5호선 서대문(강북삼성병원), 7호선 청담(한국금거래소), 8호선 단대오거리(신구대학교) 총 8개 역에 부역명이 생겼다.
2017년 5월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서울교통공사로 합병하면서 추가 사업이 멈췄다가 2021년 재개해 현재는 35개 역에 부역명이 붙었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6일까지 10개 역에 새롭게 역명병기 입찰을 시행했고 이 중 2호선 강남역, 성수역, 5호선 여의나루역, 7호선 상봉역이 낙찰됐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이번 입찰에선 '하루플란트치과의원'이 강남역 부역명을 거머쥐며 사업 이래로 최고액을 기록했고, 'CJ올리브영'이 10억 원에 성수역을 품어 그 뒤를 이었다. 'CJ올리브영'은 성수역 4번 출구 근처 대형 빌딩 '팩토리얼 성수' 1~5층을 사용할 예정이라 부역명 특수를 노린다.
강남역과 성수역의 낙찰 기초금액은 3년 기준 각각 5억 3301만 원, 2억 9947만 원이다. '하루플란트치과의원'은 2배, 'CJ올리브영'은 3배 이상으로 '이름값'을 지불한 셈이다.
서울교통공사는 "강남역 하루 평균 승차 인원은 10만 1986명으로 전국 지하철역 중 최상위 수준"이라며 "성수역은 최근 팝업스토어 성지가 되면서 MZ세대는 물론 해외 관광객이 많아진 곳"이라고 강조했다.
여의나루역은 유진투자증권이 2억 2200만 원에 낙찰받고, 상봉역은 단독으로 입찰한 비공개 기업 1곳과 수의계약을 맺었다. 여의나루역과 상봉역의 기초금액은 각각 1억 2513만 원, 1억 4548만 원이다.
역명병기 사업으로 서울교통공사는 재정난을 극복하고 기업은 인지도를 높여 서로 윈윈하는 결과를 얻는다. 서울교통공사는 "기존 역명병기 계약을 체결한 기관·기업들도 높은 홍보 효과에 만족해 올해 7월 약 80%의 재계약률을 보여 인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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