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만 바른손? 세계 '왼손잡이의 날'에도 눈칫밥


매년 8월13일 세계 왼손잡이의 날…49년 지나도 불편
시설물 오른손 위주 설계에 왼손 전용 물품은 3배 비싸

13일 세계 왼손잡이의 날을 맞았다. 올해로 49년을 맞았지만 왼손잡이들은 차별과 편견이 여전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세계 왼손잡이의 날 홍보물. /세계왼손잡이의날 홈페이지 캡처

[더팩트ㅣ장혜승 기자] #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하모(69) 씨는 어린 손녀가 왼손잡이 성향을 보이자 식사 때마다 수저를 오른손에 쥐어주는 등 '특훈'에 나섰다. 왼손을 쓰는 손녀를 초등학교 입학 전에 고쳐 줘야겠다고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13일은 '세계 왼손잡이의 날'이다. 세계 왼손잡이의 날은 오른손잡이 중심 사회에서 왼손잡이가 겪는 불편을 개선하고, 시민들의 인식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만든 날이다. 세계 최초로 국제왼손잡이협회를 창립한 미국인 딘 캠벨의 생일을 기념해 1976년 처음 제정됐다.

올해로 49년을 맞았지만 왼손잡이들은 차별과 편견이 여전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일상이나 각종 시설물은 대부분 오른손잡이 위주로 설계돼있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30) 씨는 "야구 캐치볼할 때 왼손잡이용 글러브가 준비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마우스나 지하철 개찰구 등 무조건 오른쪽 방향에 두고 사용하는 것들은 억지로 익숙해져야 했다"고 토로했다.

전남 나주시에 거주하는 직장인 박모(30) 씨는 "왼손용 가위가 많지 않아 가위질할 때 과도하게 손에 힘을 많이 줘야 한다"며 "하다못해 일식집에서도 오른쪽 방향 대각선으로 정렬된 초밥을 먹으려면 팔을 비틀어서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홍모(34) 씨는 "병원 가서 혈압을 재면 꼭 오른쪽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서 왼손도 같이 재야 하는 저같은 사람은 너무 불편하다"고 호소했다.

같은 제품도 왼손잡이 전용 제품은 비싼 값을 주고 사야 한다. 인터넷에서 '왼손잡이 전용 가위'를 검색하니 최저가 3670원으로 나왔다. 일반 가위의 3배다.

같은 제품도 왼손잡이 전용 제품은 비싼 값을 주고 사야 한다. 인터넷에서 왼손잡이 전용 가위를 검색하니 최저가 3670원으로 나왔다. 일반 가위의 3배다. /인터넷 쇼핑몰 캡처

무엇보다 왼손잡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부정적 인식이다. 어린 시절부터 오른손을 '바른손', '밥 먹는 손'으로 배운다. 교과서에서는 '바른 연필 사용법'으로 오른손으로 연필을 쥔 모습만 실려 있다.

왼손을 '바르지 않은 손'으로 배운 탓에 한국의 왼손잡이들은 눈칫밥을 먹으며 성장한다. 2013년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성인남녀 12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가 왼손잡이라고 답했다.

20대에서 8%, 30대와 40대에서 6%, 50대 3%, 60대 이상 2%였다. 나이가 많을수록 왼손잡이 비율은 떨어졌다. 오른손잡이 위주 사회에서 비주류로 살면서 오른손이나 양손잡이로 전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 씨는 "사람들이 '왼손잡이는 똑똑하다더라'고 하는데 그러면 '아유 아니에요, 저는 여러 면에서 바보예요'라고 불필요한 말을 해야 해서 칭찬의 가죽을 쓰고 있는 말이긴 하나 썩 달갑지는 않은 말"이라고 지적했다.

왼손잡이들은 공통적으로 어릴 때 부모나 가족에게 교정당한 경험을 떠올렸다. 박 씨는 "어릴 때 엄마가 왼손을 쓸 때마다 찰싹찰싹 손등을 때렸지만 꿋꿋이 밥 먹는 것도 글씨 쓰는 것도 왼손으로 했다"고 돌아봤다. 홍 씨도 "주로 왼손을 쓸 때 어머니가 손등을 '탁' 때리는 방식이었는데 아프기만 하지 그닥 큰 효과는 없었다"고 말했다.

오른손잡이 위주의 구조는 단순 차별이나 편견에서 그치지 않고 위급한 상황에서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다. 소화전 여닫이는 왼쪽을 향해 파인 홈에 오른손가락을 넣어 힘을 주어야 열리는 방식이라 왼손잡이에겐 결코 쉽지 않다. 왼손목을 반대쪽으로 꺾어 힘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오른손잡이가 열 때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이런 부정적 인식과 차별을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2003년 당시 정몽준 국민통합21 의원은 왼손잡이를 위한 편의시설을 생산·설치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것을 뼈대로 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무엇보다 왼손잡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부정적 인식이다. 어린 시절부터 오른손을 바른손, 밥 먹는 손으로 배운다. 교과서에서는 바른 연필 사용법으로 오른손으로 연필을 쥔 모습만 실려 있다. 지하철 개찰구는 일상에서 왼손잡이들이 대표적으로 맞닥뜨리는 차별적 구조물이다. /이덕인 기자

자신도 왼손잡이라 밝힌 정 의원은 발의안을 통해 일정규모 이상의 공공시설이나 군대에 왼손잡이용 물품의 설치를 의무화해 왼손잡이들의 불편함을 줄이려 했다. 하지만 법안 제정은 좌절됐다.

2020년에는 당시 총선을 앞두고 김재원 미래통합당 공약개발단장이 공약 중 일부로 '왼손잡이기본법'(가칭) 제정 계획을 발표했다. 왼손잡이기본법에는 세계왼손잡이의 날처럼 매년 8월13일을 왼손잡이의 날로 지정하고,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 등에서 왼손잡이에 대한 인식 교육을 실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하철 개찰구와 교통카드 리더기 등 오른손잡이 위주로 마련된 일상 생활 편의시설 등도 왼손잡이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개선하는 방안도 포함했다. 하지만 이 법안 역시 20대 국회 개원 이후에 발의조차 되지 않았다.

왼손잡이들은 세계 왼손잡이의 날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 남아있는 차별적 분위기가 개선되기를 주문했다. 박 씨는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다들 같은 인간이니까 '별걸'로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홍 씨는 "전 세계 왼손잡이들이 왼손 압박에 대한 해방감을 조금이나마 느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zza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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