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장우성 기자] 독일 법학계의 석학 울리히 지버 교수가 세계화·디지털화되는 범죄 대응을 위해 초국가적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울리히 지버 독일 막스플랑크 범죄·안전·법 연구소 명예소장(전 막스플랑크 연구소장)은 19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사에서 열린 제2회 형사법포럼 '21세기 형법의 근본과제들-세계화·디지털화·위험사회'에서 발표자로 나섰다.
범죄는 세계화되고 디지털화되며 다국적으로 발전하는데 형사소추는 일국적으로 진행되므로 범죄자와 수사 당국 사이 상당한 불균형을 초래한다. 지버 소장은 "범죄자와 데이터에 기반을 둔 범행도구는 전 세계를 자유롭게 이동하지만 사법적 판단은 공식 승인절차 없이는 국경을 넘을 수 없다"며 "국내법 뿐 아니라 유럽 및 국제법 수준에서도 다국적으로 효력을 발휘하는 새로운 법적 해결책이 개발돼야한다"고 말했다.
그 예로 유럽 구속영장과 유럽 검찰청을 들었다. 유럽 구속영장은 특정사건에서 외국 구속영장 심사를 생략해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에서 구속영장을 인정하는 절차를 상당히 단축해준다.
2021년 유럽연합에 설립된 유럽 검찰청(EPPO)은 유럽연합 전체에서 효력을 발휘하는 결정을 내리기 위한 또 다른 모델로 소개했다. 유럽 검찰청은 부패・경제・조세・자금세탁 등 초국가적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검사가 직접 수사해 기소하고 공소유지를 맡는 기관이다.
범죄의 디지털화에서 주목되는 인공지능(AI)도 새로운 위험을 창출한다. 딥페이크 사용, 주식시장 조작, 자율주행자동차·드론을 이용한 테러 공격 등이다. 지버 소장은 "인공지능 범죄 통제는 형법만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추가적인 대안 법체제가 필요하다"며 유럽연합이 지난 5월 채택한 인공지능 규제령을 제시했다.
세계화와 디지털화로 가속화된 위험사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뛰어넘는 형사정책의 대안적 수단이 필요하다. 지버 소장은 테러 분야에서 피해가 발생하기 전이라도 자유를 박탈할 수 있는 '예방형법', 유죄 판결에 근거하지 않는 민사상 범죄수익 몰수 등을 예로 들었다.
지버 소장은 "세계화의 증가와 이에 따른 다국적 범죄는 형사법에 대한 근본적 도전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사안에 따라서는 초국가적 형사법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며 "전통적인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넘어 현대 형사정책의 다양한 수단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했다.
1911년 설립된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산하에 86개의 연구소를 운영 중이며 단일 연구기관으로는 가장 많은 3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한국 검사들도 1974년부터 40여명이 이 연구소를 거쳤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2004년 이 곳에서 연수했으며 김석우 법무연수원장은 이듬해 객원연구원으로 몸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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