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시형 기자] 전국이 장마 영향권에 들면서 반지하 주택 주민들이 또다시 침수 악몽에 떨고 있다. 침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물막이판을 설치했음에도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 사는 나모(84) 씨는 "작년 장마 때 옷과 침대가 물에 전부 젖어 피해가 컸다"며 "올해 비 소식만 들려도 잠을 못 자고 있다"고 걱정했다.
신림동 일대는 반지하 주택이 몰려 있는 서울의 대표적 침수 취약지역으로 꼽힌다. 지난 2022년 8월에는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 3명이 침수로 고립돼 사망했다.
관악구는 당시 침수 피해를 입은 4816가구 중 96%인 4613가구에 물막이판 설치를 완료했다. 물막이판은 반지하로 빗물이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침수 시 대피 가능한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장마가 본격 시작되자 신림동 주민들은 여전히 침수 피해를 우려했다. 나 씨는 "작년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고 나서 물막이판 설치를 완료했지만 올해 예정된 장마 소식에 여전히 걱정이 태산"이라고 전했다.
물막이판의 실효성에 의문을 품는 주민들도 있었다. 또 다른 반지하 주택 주민 이모(40) 씨는 "물막이판 설치 과정에서 생수통 두 개를 쏟아부었지만 물이 잘 내려가지 않아 밑부분을 다시 잘라 보완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며 "아직 설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깃줄도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어 남는 운동화 끈으로 우선 붙들어 맸다. 이번 장마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 다세대주택 주민 김모(80) 씨는 "작년에 세입자 집이 침수돼 얼마나 손해가 많았는지 모른다"며 "물막이판을 설치하긴 했지만 올해 유독 비가 많이 온다는 뉴스가 많아 반지하 세입자를 두고 있는 우리로선 여전히 걱정스러운 마음"이라고 우려했다.
곳곳에는 물막이판조차 설치되지 않아 아무런 대비가 없는 곳도 눈에 띄었다. 반지하 주택 세입자의 경우 물막이판 설치를 위해선 집주인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일부 집주인들이 '침수주택' 꼬리표로 인한 집값 하락을 우려해 물막이판 설치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림동 주민 홍모(27) 씨는 "옆집이 재작년 침수로 심한 피해를 입었는데 아직도 물막이판이 설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약 200세대는 건물주가 침수주택 꼬리표 우려로 완강히 거부해 물막이판을 설치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지역 반지하 주택 물막이판 설치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기준 반지하 주택 2만4842가구 중 물막이판이 설치된 가구는 1만5217가구로 61.3%에 불과하다. 나머지 38.7%(9625가구)는 설치 반대, 거주자 부재 등의 이유로 물막이판이 설치되지 않았다.
반지하 주택 주민들은 물막이판을 비롯해 보다 적극적인 침수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나 씨는 "단 몇 분간 내리는 폭우라고 하더라도 우리 집 같이 산 바로 아래 내리막길에 있는 가구들은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 큰일 날 수 있다"며 "호우가 쏟아질 때 안쪽 주택가로 빗물이 유입되지 않게끔 내리막길 시작점에 있는 건물들의 경우 상가와 상가 사이 물막이판을 추가로 설치하는 등 더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비가 쏠릴 수 있는 내리막길 대로변에 배수구가 하나밖에 없어 추가 설치를 요청했으나 기존에 있는 배수구와 똑같은 낮고 얕은 크기로 설치됐다"며 "(추가 설치된 배수구가) 장마에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조금 더 길고 깊게 설치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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