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화성 희생자' 삶의 터전 정왕동 차이나타운...무거운 슬픔의 그림자


시흥 중국인 밀집 거주지역 가보니
"남의 일 같지 않아요" 이웃들 탄식

26일 오후 중국인 유족이 모여 산다고 알려진 경기 시흥시 정왕동은 슬픔의 여파가 내려앉은 듯 비교적 조용한 모습이었고 중국 교포들은 하나같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 채 고개를 떨궜다. 사진은 지난 25일 오전 경찰과 소방 관계당국 관계자들이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을 현장 감식 하는 모습. /화성=임영무 기자

[더팩트ㅣ시흥=황지향·이윤경 기자] 경기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한지 사흘째인 26일 오후 지하철 4호선 정왕역 앞은 비교적 한산했다. 오후 8시가 넘어 거리에 네온사인이 하나둘씩 불을 밝혔지만 평소와 달리 차분한 모습이었다.

경기 시흥시 정왕동은 대표적 외국인 밀집지역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시흥시에 거주 중인 외국인은 6만5040명으로 전체 시흥시 인구의 11.1%를 차지한다. 시흥시 외국인복지센터에 따르면 정왕동에만 4만여명의 중국 교포가 거주하고 있다.

이번 아리셀 공장 참사로 숨진 23명 중 중국인은 17명. 이들 중 상당수가 정왕동에 살며 매일 아침 화성으로 출퇴근했다고 한다. 유족 허모(32) 씨는 "어머니가 정왕동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공장으로 출퇴근했다"고 말했다. 아내를 떠나보낸 A 씨 역시 "아내와 함께 정왕동에서 살고 있었다"며 "우리를 비롯해 그곳에 많은 중국인 유족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날 정왕동에서도 중국인 밀집지역이라는 정왕역~정왕우체국 거리는 슬픔의 여파가 내려앉은 듯 비교적 조용했다. 문을 닫은 가게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음식점부터 철물점, 오토바이 수리점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셔터를 내린 모습이었다.

중국 교포들은 삶의 터전이 돼준 정왕동이 사고 이후 조용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별다른 추모 공간이나 분향소는 마련돼 있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한껏 가라앉은 모양새였다. 인근 중학교에 다니는 이모 양은 "확실히 사고 이후 골목이 조용해졌다"며 "아무래도 사고 여파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26일 오후 경기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중국인 유가족이 거주한다는 경기 시흥시 정왕동 거리는 차분하고 조용한 모습이었다. 오가는 발걸음도 뜸했다. /황지향 기자

중국 교포들은 하나같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 채 고개를 떨궜다. 슈퍼에서 근무 중인 B 씨는 "여기 오는 가게 손님 중에서도 화성 인근 공장으로 출퇴근하는 분들이 많다"며 "사고 소식을 접하고 너무 놀라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리기 바빴다"고 했다. 이어 "다행히 피해를 본 사람은 없었지만, 중국 동포로서 마음이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동탄에 있는 공장에서 일한다는 김모(37) 씨도 "집에 부모님과 아이가 있는 제가 그런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면 남일 같지 않다"며 "쉬는 시간마다 마음 졸이며 뉴스를 확인하고 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동포들이 많이 희생된 만큼 지원을 잘해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일부는 사망자 중 15명이 여성이었다는 사실에 특히 아파했다. 중국 헤이룽강(흑룡강)에서 한국에 온 지 10년 됐다는 신모(40) 씨는 "누군가의 엄마, 아내였을 사람들이었을 텐데 23개의 가정이 깨졌다는 사실이 가장 슬프다"고 했다. 신 씨는 "앞으로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 예방해야 한다"며 "식당을 하는 우리도 소화기를 항상 점검하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지원에 차별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전했다. 중국 웨이하이 출신인 장모(48) 씨는 "같은 중국인으로서 멀리 타지에서 고생하다 돌아가신 게 마음이 아프다"며 "보상과 지원에 소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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