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오늘 수료식인데…'얼차려 사망' 훈련병 분향소 추모 물결


폭염에도 시민 발길 이어져

19일 오후 군인권센터가 유가족과 협의해 마련한 얼차려 사망 훈련병 시민 추모 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국화를 놓고 있다. 33도의 무더위에도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황지향 기자

[더팩트ㅣ황지향 기자] "똑같이 군대를 다녀온 사람으로서 너무 안타까워 추모하러 왔습니다."

19일 오후 서울 용산역 광장을 찾은 시민 김모(30) 씨는 "지난달 25일 12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교육을 받다 숨진 A 훈련병의 추모 공간이 차려진다는 소식에 시간을 내서 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서울에 올해 첫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이날 용산역 광장에 마련된 A 훈련병 분향소에는 시민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불볕더위에 시민들은 땀을 연신 흘리면서도 국화를 놓으며 고인을 추모했다.

이날은 12사단 신병교육대 수료식이 있던 날. 군인권센터는 A 훈련병 유가족과 협의해 오전 11시부터 시민 추모 분향소를 열었다. 점심시간부터 시민들은 검정색 옷을 입고 분향소로 향했다.

분향소에선 가수 김광석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가 흘러나왔다. 영정사진 옆에는 이미 국화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액자 속에는 '육군 제12사단 고 박모 훈련병'이라는 글자가 사진을 대신하고 있었다. 추모 공간 한편에는 A 훈련병이 입영식에서 어머니를 업고 찍은 사진이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시민들은 조용히 국화를 놓으며 고개를 숙였다. 추모를 마치고 나오는 시민들은 더위도 잊은 채 한참이나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A 훈련병 어머니가 입영 당시 쓴 편지를 읽고 끝내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보였다.

A 훈련병 어머니는 훈련병이 입영한 지난달 13일 "너의 모든 안전에 감사하겠다"는 편지를 썼다. 어머니는 "우리 아들 씩씩하고 건강하게 입대할 수 있어서 고맙고 자랑스럽다"며 "주님의 은총이 너와 함께하시기를 기도한다"고 썼다. 편지의 처음과 끝은 "사랑한다"였다.

19일 오후 지난달 사망한 훈련병 추모 분향소에 마련된 추모 메시지 공간에 시민들이 제각각 할말을 남겼다. 잊지 않겠다, 10여 년 전과 달라진 게 없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미안하다,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등의 메모가 붙어있다. /황지향 기자

강자평(34) 씨는 "아들로서, 남자로서 어머니가 써주신 편지에 울컥한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고등학생 아들을 둔 황인승(55) 씨는 어두운 표정으로 추모를 마치고 나오면서 "희생만 있고 처벌은 없는 우리나라가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공평하지도 못하다고 생각한다"며 "고등학생 아들은 절대 군대에 보내고 싶지 않다"고 분노했다.

일부는 메모지에 추모의 메시지를 써 붙였다. '미안하다', '너의 계급장 달아주러 왔다', '잊지 않겠다', '10여 년 전과 달라진 게 없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미안하다',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유감스러운 시대에 유감스러운 용산 국방부', '억울하지 않게 정의가 실현되게 끝까지 노력하겠다' 등 정부를 향한 비판의 의견도 눈에 띄었다.

이날 수료식에 갈 수 없는 유가족은 오후 6시부터 분향소에 나와 직접 시민들을 맞을 예정이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지난 22일 신병교육대대에서 훈련병 6명은 떠들었다는 이유로 다음 날 오후 완전군장을 차고 연병장을 돌았다. 이 과정에서 A 훈련병의 안색과 건강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아 다른 훈련병들이 집행간부에게 보고했으나 별다른 조치 없이 계속 얼차려가 이뤄졌다. 이후 A 훈련병은 쓰러져 의식을 잃었으며 민간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같은 달 25일 오후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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