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해야 벌금형…솜방망이 처벌 비웃는 '살인예고'


수사기관 붙잡아도 법리 마땅치 않아
전문가들 "공중테러 관련 조항 신설해야"

지난해 7월 신림역 칼부림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이른바 살인예고 글이 반복되고 있다. 시민들은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지만 현행법상 적용할 죄명이 마땅치 않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뉴시스

[더팩트ㅣ조소현·이윤경 기자] "어디 돌아다니질 못하겠어요. 약속 장소를 바꾸거나 일정을 취소해야죠."

지난해 7월 '신림역 칼부림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이른바 살인예고 글이 반복되고 있다. 시민들은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지만 적용할 법리가 마땅치 않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는 지적이다. 테러에 준해 처벌할 수 있도록 법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1일 경찰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온라인에 살인예고 글을 올린 이들에게 협박과 살인예비·음모,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22일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서울역에 5월24일 칼부림하러간다, 남녀 50명 아무나 죽이겠다"는 글을 올린 30대 남성 A 씨도 협박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 송치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적절한 처벌이 쉽지않다고 본다. "행위자의 언동이 단순한 감정적인 욕설 내지 일시적 분노의 표시에 불과해 주위 사정에 비춰 가해의 의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때에는 협박행위 내지 협박의 의사를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 실제 발생 가능할 것으로 생각될 정도의 '구체적인 해악의 고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살인예비·음모죄 역시 실제로 살인을 하려는 의도가 입증되고 구체적인 살인 계획과 대상이 특정돼야 성립할 수 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협박죄가 성립하려면 개인이 특정돼야 한다. 다수를 협박하는 것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막연하게 '죽이겠다' 하는 것도 살인예비·음모로 처벌할 수 없다"며 "예고글에 경찰이 출동해도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에 공무집행방해죄 적용도 힘들다"고 설명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도 "살인예고 글에 딱 들어맞는 법규가 없다"며 "수사기관과 재판부가 임시적으로 (혐의를) 적용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법논리가 궁색해도 죄질이 워낙 중하고 사회적 여파가 커 처벌을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1일 경찰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온라인에 살인예고 글을 올린 이들에게 협박과 살인예비·음모,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7월26일 서울 관악구 신림역 칼부림 살인사건 현장 인근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추모객들이 추모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처벌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등에 그친다. 살인예비·음모죄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적용이 까다롭다. 살인예고 글 작성자들이 일반적으로 협박죄와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받는 이유다. 협박죄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형, 공무집행방해죄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이 가능하다.

지난해 8월 서울 한티역 일대에서 살인예고 글을 올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이모 씨도 최근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이 씨는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내일 오후 10시에 한티역에서 칼부림 예정"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작성한 혐의를 받는다. 이 씨의 글로 당일 현장에는 경찰관 33명이 출동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글을 게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삭제했고 경찰에 자진 출석했다는 이유 등으로 이같이 판결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죄질이 나쁘고 사회적 불안감을 야기하는 만큼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서울 일선 경찰서 한 형사과장은 "단순히 장난이었다고 하지만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기 때문에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 공중협박죄 등을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도 "현행 법상으로는 불특정 다수에 위해를 가하겠다는 사범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며 "차라리 공중테러와 관련한 처벌 근거를 신설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전했다.

다만 형사처벌 규정을 만들 때는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윤해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법을 너무 많이 만드는 것은 형사정책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형벌은 최후수단으로 맨 마지막에 적용해야 한다. 처벌 만능주의로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처벌보다는 교육과 홍보, 건전한 인터넷 문화 등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며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모니터링을 통해 삭제 조치를 하거나 특정인이라면 경고나 주의를 주는 등 처벌 외 다른 방식을 통한 규제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sohyun@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