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황지향 기자]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64.4%가 연인과 같은 친밀한 관계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28일 오후 서울 중구 바비엥2 교육센터에서 '스토킹 범죄 피해자 구제 및 대응체계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정책토론회를 열고 이같이 발표했다.
◆ 스토킹범죄 판례, 64.4% 연인 사이
경찰대학 산학협력단은 인권위 의뢰를 받고 2022년 1월10일부터 2023년 11월15일까지 스토킹처벌법 위반으로 의율된 하급심 판결문 2497건을 수집해 분석했다. 제1심 판결문 2086건, 항소심 411건이다.
분석 결과, 1심 판결문 중 64.4%인 1343건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전 연인 또는 현 연인, 배우자였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일방적으로 구애하는 과정에서 스토킹범죄가 발생한 경우는 277건으로 10.9%로 집계됐다.
이웃간 층간소음 분쟁이 113건(5.4%) 채권추심 등 금전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지속적인 괴롭힘이 74건(3.5%)으로 그 뒤를 이었다.
연구진은 "교제폭력으로서의 스토킹범죄의 특성이 뚜렷하다"며 "스토킹처벌법 해석상 피해자·가해자 간의 관계를 교제관계 및 이에 준하는 관계로 한정하지 않은 결과, 교제폭력으로서의 스토킹범죄의 특성이 발견되지 않는 이질적인 행위가 스토킹범죄로 통칭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스토킹범죄의 피해자 중 여성이 1780건으로 85.3%로 나타났다. 남성이 스토킹범죄의 피해자였던 경우는 246건으로 11.8%다. 연구진은 "대부분 여성이 피해자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여성 대상 폭력으로 그 특성을 파악함에 무리가 없다"고 봤다.
스토킹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한 연령대는 40대로 21.2%(442건)였다. 20대 436건(20.9%), 30대 395건(18.9%), 50대 327건(15.7%) 순이었다. 연구진은 "교제폭력으로서의 스토킹범죄의 특성으로 인해 자칫 스토킹범죄가 젊은 연령층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범죄로 오인하기 쉽지만 전 연령대에서 걸쳐 확인된다"고 강조했다.
◆ '명시적 의사표시' 두고 실무와의 괴리도
이날 실태조사 결과발표를 한 한민경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스토킹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무려 6개의 범죄성립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며 "여전히 개별 스토킹 사건마다 구성요건을 둘러싼 해석이 분분해 수사단계에서 스토킹처벌법 적용에 혼란을 야기하고 피해자 구제에 한계로 남는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특히 스토킹행위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할 것을 요구하는 것과 관련해 그 의사가 명시적일 필요가 없음에도 날짜 등을 특정하고 있는 형사사법 실무를 꼬집었다. 한 교수는 "(조사를 위해) 인터뷰에 참여한 스토킹범죄 전담 경찰관들은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거절 의사가 명확해야' 한다고 언급했다"며 "그러나 스토킹처벌법 제정 당시 스토킹 범위를 너무 좁게 설정되게 하는 것을 막으려 '명시적'이라는 관형사를 뺀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에 전지혜 경찰청 여성안전기획과 스토킹정책계 계장은 "경찰청 스토킹 메뉴얼에서는 상대방이 거부 의사를 표시하지 않더라도 묵시적 또는 추정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판단될 경우, 피해자 의사에 반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명시돼 있다"며 "가해자에게 거부의사를 분명히 전달했는지와 같은 취지의 질문은 최대한 자제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호 지원기관과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윤상연 경상국립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가해자는 상대방을 소유하거나 통제, 지배하려는 경향이 높다"며 "통제를 벗어난 피해자에 대한 지배를 회복하기 위해선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고 설명했다. "개선을 위해서 가해자 중심의 접근할 필요가 있고 치료적 접근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피해자에 대해서는 "현재 진행형의 스토킹에 두려움을 더 크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며 "가해자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이며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이 현재에도 경험하고 있는 심리적 문제들을 이해하고 적절한 대응방식이 필요하다"며 "신고 이후 가해자의 접근 및 보복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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