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황지향·장혜승·정채영 기자] 성범죄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경희대 의과대학 교수가 최근까지 진료를 보고, 수업도 진행해왔던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 기소 이후 무려 3년간 병원과 학교에 출근했는데도 학교는 "학생들과 관련돼 있거나 강의와 상관있는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실상 방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23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대법원 3부(오석준 주심 대법관)는 지난달 25일 준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경희대학교병원 심장내과 교수 A 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1년6개월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 씨는 지난 2019년 3월 서울 동대문구에서 모 제약회사 직원들과 회식을 마친 뒤 술에 취한 여직원을 인근의 본인 연구실로 데려가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 여직원은 사건 발생 1년2개월이 지난 뒤인 2020년 5월 제약회사를 그만두고 A 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2021년 6월 A 씨를 재판에 넘겼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2월 A 씨의 혐의를 인정해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강제추행의 태양 및 죄질이 불량하고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했으며 어떤 피해도 회복된 바 없어 피고인을 엄히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A 씨는 "연구실에 데려간 적 없고 추행한 사실도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 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대법원 역시 "준강제추행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 원심의 형을 확정했다. 1,2심은 A 씨를 법정구속하지 않았고 대법원 선고 후 수감됐다.
특히 A 씨는 사건 발생 이후 경찰 수사를 받고 재판이 진행된 지난 4년간 병원에서 환자 진료를 보고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것으로 나타났다. A 씨는 지난해 의학과 1, 2학년 수업을 진행했다. 올해 의학과 2학년 수업의 3주차, 13주차 교과목에도 이름을 올렸다. 경희대 의대는 의정 갈등으로 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면서 개강을 미루다 지난달 1일 개강해 현재 8주차 수업이 진행 중이다.
더욱이 학교 측은 확정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A 씨에게 별다른 징계 조치도 하지 않았다. 경희대 교원인사기본규정에 따르면 총장은 교원이 본분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을 때나 직무를 게을리할 때, 교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했을 때 임용권자에게 징계를 요청할 수 있다. 징계 양정에 관한 기준은 '사립학교 교원 징계규칙' 등에 의한다. 해당 규칙에 의하면 성희롱은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에 해당한다. 성희롱에 대한 별도의 단서나 조건은 없다. 학교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여부를 결정한 뒤 행정절차를 거치면 된다.
병원 진료도 대법원 확정 판결 직전까지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희대병원 관계자는 "A 교수가 지난달 25일부터 진료에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대법원 선고일인 지난달 25일에야 A 씨는 학교와 병원에서 모두 해임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의대 홈페이지에는 여전히 교수진으로 A 씨를 안내했다. <더팩트>가 취재를 시작한 지난 13일 오후 해당 페이지는 삭제됐다.
경희대는 "개인 징계 사안은 인사 비밀이라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면서도 "학생과 관련돼 있는 사안이 아니라서 바로 직무정지를 할 수는 없었다. 보통 3심에서도 결과가 뒤집어지는 경우가 있지 않냐"고 말했다. 해임 전까지 의대 수업을 진행한 것을 두고는 "대부분 강의가 온라인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예전에 올린 영상이 있을 수는 있지만 (판결이 난) 지금은 안 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경희대병원은 "교원 규정에 따라 형의 선고에 의한 당연퇴직 처리가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까지 진료를 보던 교수님이 이렇게 퇴직 처리가 되고 나가게 돼 혼란스러운 상태"라면서 "한달이나 전에 나가신 분 때문에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남아있는 다른 직원들이 피해를 받게 될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