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영봉·장혜승·이윤경 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강행에 반발한 교수 사직서 제출이 잇따르면서 대학병원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법적으로 사직서 제출 30일 후에는 무조건 효력이 발생하는데 정부의 사직서 수리 금지 압박에 병원들은 눈치만 보고 있다.
28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 교수들은 지난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교수가 의료 현장을 떠나면 의료법에 근거한 각종 명령을 내리겠다는 정부 경고에도 2000명 증원에 반대하는 교수들의 사직서는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진의 없는 의사표시’는 무효라는 민법 107조에 따라 교수들의 사직은 처리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교수들이 자발적이 아니라 압력이나 분위기에 따라 사직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무효라는 뜻이다.
하지만 민법 660조에 따르면 고용기간의 약정이 없는 근로자는 사직 의사를 밝히고 1개월이 지나면 효력이 생긴다. 지난 25일 사직서를 제출한 의사의 경우 한 달이 지나는 4월24일부터는 사직 효력이 발생할 수 있다.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아도 한달이 지나면 방법이 없는 셈이다.
정혜승 법무법인 반우 변호사(의료법 전문)는 "민법이나 근로기준법은 근로자를 보호하는데 초점을 맞춰 해고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하지만 거꾸로 이 고용계약을 빌미삼아 그만두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막는 것도 있다"며 "강제 노동을 금지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소민안 지정노무법인 노무사도 "의료법에 의사들을 그만두게 하지 못하게 하는 별도의 내용이 없다면 민법660조가 적용돼 의사들이 사직서 제출 후 수리가 되지 않아도 30일 후면 효력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대학병원은 교수와 정부 사이에서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한 관계자는 "현재 사직문제로 (대학)병원들이 엄청 고민이 크다"며 "사직서 수리 여부는 병원이 알아서 할 일인데 정부에서 (수리)하지 말라고 한다. 어기면 상급병원으로 지정된 것을 철회한다든가, 수련병원 자격을 거둔다든가 압박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교수들이 병원을 떠날 경우 상급종합병원에서 강등될 가능성도 있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질환 등 난이도가 높은 의료행위를 전문적으로 하는 종합병원이다. 300병상이 넘고 20개 이상의 진료과목을 갖춰야 한다. 진료과목별로 전속하는 전문의 1명 이상을 두고 전문의가 되려는 사람을 수련시키는 기관이다.
서울 상급종합병원 한 관계자는 "병원마다 차이는 있지만 전문의가 적은 진료과의 경우 전문의가 10명인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의대교수들의 잇따른 사직서 제출 추세로 봐서 진료과에 전문의가 한 명도 남지 않거나 입원환자당 전문의수가 기준에 미달한다면 강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학병원들은 법적으로 사직서 효력이 발생하는 한 달 전에 사태 해결이 되길 바라며 사직서 수리는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대학병원 한 관계자는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과 정부의 압박에 막막하고 답답한 상황"이라며 "만약 한 달 후 교수들 사직이 현실화되면 병원 문을 닫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현재 상황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지금은 정부의 눈치만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