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장혜승 기자] "의대 증원 없이 수가 인상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건강보험료가 3~4배 이상 올라갈 것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
"의대 정원이 2000명으로 증가할 경우 2040년 요양급여비용 총액은 약 35조원 늘어나고, 이는 국민 1인당 월 6만원의 건보료를 더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
의대 증원을 놓고 정부와 의사 간 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증원에 따른 건보료 인상이 쟁점으로 떠오른다. 정부는 의사 증원 없이 수가를 올리면 건보료도 올라갈 것이라고 우려한다. 반면 의사단체는 의사가 늘어나면 건보료 부담도 늘어난다는 입장이다.
수가는 의료기관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환자와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에게 받는 총액이다. 전 국민 건강보험 제도를 운영하는 한국에서는 치료비 대부분을 환자 대신 건보공단이 지불한다. 이 때문에 수가란 사실상 건보공단에서 정한 진료비다.
현재 건강보험의 수가는 모든 개별 의료행위마다 단가를 정해 건보공단이 지불하는 '행위별 수가제'를 채택하고 있다. 건보가 적용되는 의료행위를 6000개 정도로 구분하는데 급여 항목이라고 한다. 6000개의 의료행위는 기본진료와 수술, 처치, 검체검사, 영상검사, 기능검사 6개 항목으로 분류할 수 있다. 반대로 건보가 보장하지 않는 의료행위는 비급여라고 한다.
복지부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행위별 수가가 전체 건보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다. 수가를 올리면 건보료는 인상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건보료가 오르면 결국 국민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다만 의사 수와 수가의 상관관계는 다소 불명확하다. 늘더라도 정비례로 늘어날지는 미지수다. 정혜승 법무법인 반우 변호사는 "행위별 수가제 특성상 의사가 늘면 진료행위도 증가할 테니 (수가도) 늘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정비례로 늘어날지는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가는 나라에서 정하니까 필수의료나 공공의료는 올릴 수 있다"며 "수가가 (의사 수와) 똑같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수가는 건보 가입자를 대신하는 건보공단과 의사협회, 병원협회, 치과의사협회 등 각 직종과 병원을 대표하는 단체들 협상으로 결정된다.
의사 수와 건보료의 상관관계도 주장이 엇갈린다. 정부는 의사 수와 진료비의 상관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의료개혁에 대한 오해와 진실 Q&A'에서 "의사 수가 늘면 소위 '응급실 뺑뺑이'와 같은 미충족된 필수의료를 골든타임 내 제공할 수 있어 의료비 등 사회·경제적 비용이 절감된다"고 설명했다. 2012년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비용-편익분석 결과에 따르면 뇌졸중과 심근경색 등 중증질환의 골든타임 내 치료 시 연간 절감비용이 763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가 부족하면 의사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져 수가가 높아진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2019년 봉직의 인건비가 평균 1억8000만원이었는데 최근 전문의 구인광고 연봉 평균은 4억원이었다"며 "종합병원 전문의 연봉이 4억원이 됐고 시간이 지나면 대학교수 월급도 그에 맞춰 인상된다"고 설명했다.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데 들어가는 원가의 50~60%가 인건비고 그 인건비의 절반 가까이가 의사 인건비인 점을 고려하면 의사 월급이 오르면 건보 수가로 보상해야 될 의료행위의 원가도 같이 오른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의사 연봉 상승 추세가 지속되면 국민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의료비가 20조원이 추가된다"며 "나중에는 추가 부담해야 할 의료비가 30조, 40조원이 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소득이 낮고 격무인 임상 분야를 기피하는 현상 때문에 의사 수 증가가 건보료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신현호 법무법인 해울 변호사는 "의사들이 환자 고름 짜면서 욕 먹는 임상보다는 AI나 제약처럼 소득이 높은 분야로 진출하려 하기 때문에 의사 수가 늘어난다고 건보료가 늘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의사단체들은 수가와 건보료 인상 없는 의대 증원은 건보 재정 악화를 가속화한다는 입장이다.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은 "건보 재정은 의대 정원 문제와 상관없이 굉장히 위험한 상태"라며 "수가와 건보료 인상 없이 구조를 의사를 늘리면 재정 악화에 기름을 붓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 원장은 "의대 정원 규모가 2000명과 3000명으로 증가하게 될 경우 2040년 요양급여비용 총액은 각각 약 35조원과 약 52조원 더 늘어날 것이다. 이는 국민 1인당 월 6만원과 8만5000원의 건보료를 더 부담해야 된다는 의미"라며 "의대 정원 문제를 정치적으로 결정하게 될 경우 국민의 건보료 폭탄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수가로 의료서비스 가격이 고정된 시스템에서는 의사들이 필사적으로 진료 횟수를 늘려 소득까지 늘리려 한다. 이 때문에 의사 수 증가가 진료비 증가와 건보료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최하위권이다. 일본은 한국과 같은 2.6명이다. 국민 1인당 진료 횟수를 들여다 보면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한국은 2021년 평균 15.7회 의사를 만나 1위를 기록했다. 일본은 11.1회로 2위를 차지했다.
현재 문제점이 의사 수 부족이 아니라 필수의료 분야 기피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증원의 목적이 필수의료 종사자 확충인데 이는 필수의료 수가 인상이 뒷받침돼야 하는 만큼 결국 건보료 증가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실은 증원된 인력이 지역·필수 의료 인력에 종사하도록 지역정책 수가 확대 등의 정책적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건보료 증가가 불가피하다.
2023년 10월 국회 예산정책처의 '2023~2032년 건보 재정전망'에 따르면 현행 보험료율 인상 수준이 유지될 경우 건보 수입액은 지난해 93조원에서 2032년 175조원으로 연평균 7.2% 증가한다. 반면 건보 지출액은 지난해 92조원에서 2032년 195조원으로 연평균 8.9%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추세대로라면 건강보험 재정수지가 2024년에 적자로 전환되고 2028년에는 누적 준비금이 소진되며 2032년 누적 적자액은 61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강현 의협 비대위 대변인은 "의사 수가 늘면 건보료도 올라갈 것"이라며 "의사가 늘면 진료비도 올라간다. 우리나라와 의사 수가 비슷한 일본 게이오대 미나미 이치로 교수의 논문에서도 의사가 늘면 진료비가 제일 많이 오른다는 내용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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