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소현 기자·이윤경 인턴기자] 정부의 엄정 대응 방침에도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의사들 집단행동이 나흘째 이어지면서 의료현장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정부는 보건의료재난 위기 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했으며, 의사단체들도 이에 맞서 정부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의료공백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환자와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의 한숨만 깊어지고 있다.
2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10시 기준 주요 94개 수련병원에서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총 8897명(78.5%)으로 집계됐다. 사직서 제출 후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7863명(69.4%)으로 조사됐다.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와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전날보다 각각 378명과 161명 줄었다. 이는 복지부가 기존에 집계해오던 100곳의 병원 중 자료를 부실하게 제출한 6곳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집계 대상 병원 수가 줄어든 만큼 전공의 사직 자체는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다.
전공의 이탈이 나흘째 이어지면서 의료현장 혼란의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이 입고 있다.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환자 피해사례는 40건 늘어난 총 189건이다. 새로 접수된 피해사례는 수술 지연 27건, 진료 거절 6건, 진료예약 취소 4건, 입원 지연 3건 등이다.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인 우모(37) 씨는 "전문의 선생님이 항암치료 때문에 동의서를 받으러 왔는데 제 주치의가 아니니까 잘 모르더라"며 "혼자 회진을 도니 피로도가 많이 높은 것 같다. 딱 봐도 피곤해 보였고 회진도 더 짧게 진행해 질문하기도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의 신음도 깊어지고 있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면서 업무가 늘어난 간호사들은 수술 봉합에 처방까지 불법진료에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전공의 업무 대부분을 떠맡아 불법진료 행위를 지시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간협은 "채혈과 동맥혈 채취, 혈액 배양검사 등 검사와 심전도 검사, 잔뇨 초음파(RU sono) 등 치료·처치 및 검사, 수술보조 및 봉합 등 수술 관련 업무, 병동 내 교수 아이디를 이용한 대리처방 등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초진기록지와 퇴원요약지, 진단서 등 각종 의무기록을 대리 작성하도록 하고 환자 입·퇴원 서류 작성 등도 간호사들에게 강요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간호사들은 불법의료 행위로 오히려 고발당할 위기에 놓였다고도 주장했다. 간협은 "많은 간호사들이 지금도 전공의들이 떠난 빈 자리에 법적 보호장치 없이 내몰리고 있다. 하루하루 불안 속 과중한 업무를 감내하는 중"이라며 실제 고발이 이뤄질 경우 맞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소폭 감소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6시 기준 전국 12개 의대에서 49명이 추가로 휴학을 신청했다. 이에 따라 지난 19일 이후 휴학을 신청한 의대생은 총 1만1827명에 달한다. 다만 전날 1개교에서 346명이 휴학 신청을 철회해 총 1만1481명의 휴학계만 남았다. 전국 의대 재학생 1만8793명의 61.1%다.
휴학이 허가된 인원은 총 45명이다. 모두 군 입대와 유급, 건강 등 학칙에서 정한 휴학 사유가 인정된 학생들이다. 교육부는 동맹휴학에 대한 허가는 1건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수업 거부가 확인된 곳은 11개교다. 학교 측은 학생 면담 등을 통해 정상적인 학사운영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게 교육부 설명이다.
정부는 이날 오전 8시를 기해 보건의료재난 경보 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했다. 정부는 국무총리 주재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해 관계부처와 17개 시·도가 함께 범정부 총력 대응체계에 돌입한다.
특히 의료공백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정부는 이날부터 의사 집단행동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비대면 진료도 전면 허용하기로 했다. 별도의 신청이나 지정 없이 희망하는 의원, 병원 등 모든 의료기관에서 비대면 진료가 전면 시행된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전공의 이탈이 심한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응급환자 진료에 역량을 집중해 의료진 소진을 방지하고, 중등증 이하 환자는 지역 2차 병원급에서, 경증 외래 환자는 의원급에서 각각 진료토록 할 계획"이라며 "이 과정에서 높아진 지역 병·의원 외래 수요에 원활히 대처하기 위해 비대면 진료를 활용해 국민의 불편을 최소화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의협)는 "황당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이날 "진료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곳은 중증·응급환자를 중점적으로 진료하는 상급종합병원을 비롯한 수련병원들"이라며 "갑자기 중증·응급 질환에는 적용조차 불가능한 비대면 진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비논리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조치는 그동안 1·2차 의료기관에서 안정적으로 관리 받으며 정기적으로 대면 진료 후 처방을 받는 만성질환자들도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게 만들어 환자들을 더욱 위기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협 비대위는 오는 25일 이후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전자 투표에 나설 방침이다. 주 위원장은 "파업할지 말지를 묻는 투표가 아니다"며 "의사들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 최후의 행동을 할 것인데, 그 시작 시점과 종료 시점을 의협 집행부가 아닌 전체 회원의 의견을 물어 결정할지 여부를 묻는 투표"라고 설명했다. 내달 3일에는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