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장혜승 기자] "전에는 들어온 물품만 받아서 갔는데 이제는 내가 필요한 것만 고를 수 있어 좋아요."
지난 7일 오후 2시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온기창고에서 진열된 물품을 둘러보던 동자동 주민 이모(55) 씨는 컵라면을 장바구니에 담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쪽방주민을 위한 수요맞춤형 푸드마켓이다. 매장에 후원받은 생필품을 진열하고, 주민들이 필요한 물품을 개인이 배정받은 적립금 한도 내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해서 가져가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쪽방주민들에게 후원물품을 배분할 때 선착순과 줄서기 관행을 개선한다는 취지로 도입한 정책이다.
그동안 쪽방상담소는 협소한 공간과 인력부족 등으로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에서 후원물품이 들어올 때마다 날짜를 정해 선착순으로 나눠줬다. 일찍부터 긴 줄을 서야 하다 보니 주민들의 자존감이 낮아지고,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들이 배분 과정에서 불이익을 겪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날 만난 주민들은 개인 사정에 따라 필요한 물건을 골라 살 수 있어 좋다고 입을 모았다.
쪽방 주민이면서 온기창고 직원으로 근무하는 한종희(71) 씨는 "휴지와 세제 등 생필품이 많아서 좋다"며 "그 전에 기업에서 배분받던 물품은 라면처럼 식료품이 많았는데 여기는 식품뿐만 아니라 생활용품들이 많아서 골라 담을 수 있다"고 만족했다.
동자동에 10년째 산다는 정지영(64) 씨는 "집에서 밥을 자주 해먹는 편이다 보니 간장과 된장을 많이 쓰게 된다"며 "양념류 제품이 더 많이 들어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시 공공일자리에 참여하는 주민 4명이 직원으로 근무한다. 주민 입장에서 불편한 점을 개선해 매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직원 이상범(55) 씨는 진열된 물품 중 견과류 세트가 비닐로 포장돼 구성이 안 보인다는 점을 간파해 개선했다. 어느날 물품을 둘러보던 주민이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잘 안 보인다"고 하자 "샘플을 비치해야 한다"고 아이디어를 냈다. 이 아이디어는 즉각 반영돼 견과류 제품 위에 비닐이 벗겨진 샘플을 놓아두게 됐다.
월 10만 점 한도로 제공되는 적립금 범위 안에서 알뜰하게 물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직원들의 몫이다. 한주에 2만5000점까지만 쓸 수 있어 주민들이 장바구니에 담은 물품들을 꼼꼼히 살펴보며 남은 한도에서 구매할 수 있는 물품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이날 5만점으로 책정된 전기담요에 한 주민이 관심을 보이자 이씨는 "5만점짜리 물품이라 지금 구매하면 다음주까지 포인트를 사용할 수 없다"고 안내했다.
또다른 주민은 컵라면과 김치볶음, 휴지 등이 빼곡히 채워진 장바구니를 보며 "5000점 남았다. 오예스를 하나 가져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이씨는 "우유 세 개를 사도 되겠다"고 조언했다.
이곳은 지난해 8월 문을 열었다. 월·수·금요일, 주 3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한다. 일주일 평균 600명, 누적 1만3000명 이상이 이용했다.
이용대상은 쪽방상담소 등록 회원으로 회원카드를 발급받은 주민이다. 월 10만점의 적립금만큼 물품을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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