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개입 있었지만 양승태 가담안해"…'사법농단' 1심 무죄 (종합)


47개 혐의·277번 재판·기소 5년 만에 결론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의 핵심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진은 양 전 대법원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 공판 후 법정을 나서는 모습./뉴시스

[더팩트ㅣ김시형 기자]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의 핵심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 2019년 사건이 재판에 넘겨진 지 5년여 만의 결론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5-1부(이종민·임정택·민소영 부장판사)는 26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등 혐의를 받는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한일관계 악화를 우려한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에게 부담이었던 강제징용 사건 선고를 고의로 늦추고 여러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해 그 대가로 상고법원 도입과 법관 재외공관 파견 등을 추진한 의혹 등 총 47개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사건은 지난 2019년 3월 첫 공판 이후 결심 공판까지 277차례나 열렸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직접 법정에 불러 신문한 증인은 211명에 달한다. 이날 선고는 기록이 방대한 만큼 최종 선고까지 4시간 넘게 소요됐다. 선고 중간에 이례적으로 휴정을 하기도 했다.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의 주요 혐의인 '직권남용'을 비롯한 모든 혐의에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을 비롯한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원세훈 전 국정원장 대선개입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등의 재판에 개입한 의혹에 대해 모두 "범죄의 증명이 되지 않는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의 주요 혐의인 직권남용을 비롯한 모든 혐의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판단했다. 사진은 양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자신의 결심 공판 후 법정을 나서는 모습./뉴시스

재임 당시 법원행정처 차원에서의 재판 개입은 있었지만 양 전 대법원장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과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고, 판결 관련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것은 '일반적 직무권한'에 해당한다고 봤다. 직권남용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만 헌법재판소를 견제하기 위해 파견 법관을 활용해 내부 정보를 수집하게 한 혐의는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관들에게 이를 지시한 것도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비판적 세력인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인권과사법제도모임(인사모)을 와해하기 위해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것도 "법관의 표현의 자유 및 연구의 자유를 침해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여기에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고 봤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일부 판사들을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해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도 있다. 이에 재판부는 '일반적 직무권한'은 인정되지만 직권남용이나 의무 없는 일을 한 것은 아니라고 봤다.

앞서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징역 7년을,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게 각각 징역 5년과 4년을 구형한 바 있다. 검찰은 지난해 9월 결심 공판에서 "법관 독립을 중대히 침해한 행정권 남용이자 우리나라 사법 제도 신뢰를 무너뜨린 사건"이라며 이들에게 중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사건을 검찰의 불법적인 수사권 남용으로 규정하며 그간 모든 혐의를 부인해왔다. 양 전 대법원장은 최후진술에서 "문재인 정권이 권력을 다지기 위해 '먼지털이식 수사'를 했다"며 "사법부의 미래를 장악하기 위해 사법부의 과거를 지배하고 검찰은 이에 부응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 검사 70~80명이 동원됐고 수사 범위는 무한정이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선고 직후 입장문을 내고 "법리판단을 면밀하게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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