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윤경 인턴기자] 성탄절 화재로 32명의 사상자를 낸 도봉구 아파트 주민들이 화재 발생 사흘째를 맞았지만 여전한 냄새와 연기 등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27일 오전 서울 도봉구 23층짜리 아파트의 1호 라인은 3층부터 11층까지 검게 그을린 모습이었다. 화마가 직접 덮친 세대는 창문도 없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301호 바로 아래층에 부모가 산다는 40대 김모 씨는 "그을음 냄새가 조금 빠지긴 했지만 엘리베이터와 계단 쪽은 마스크 없으면 좀 힘들 정도로 냄새가 난다"고 하소연했다. 김 씨는 "천장에서 물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건들지 말라고 해서 물만 치웠는데, 그래도 물이 고여 있어서 전기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2호와 3호 라인 주민들도 불편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2호 라인에 사는 최모(58) 씨는 "냄새 때문에 도저히 있을 수 없다. 지금도 병원에 가보는 중"이라며 "집엔 청소업체를 개인적으로 먼저 불러서 청소 중인데, 복도는 아직 청소업체가 못 들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3호 라인에 거주하는 50대 김모 씨도 "저희 집도 연기가 많이 들어왔다"며 "복도에도 연기가 많아서 대피하려다 못 나갔는데, 기침도 계속 나고 약간 어지러움도 있고 가슴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아파트 입구에는 집 청소를 하기 위해 오가는 주민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했다. 화재 피해를 입은 세대 중 일부는 현재 도봉구청에서 지정해 준 숙박업소나 친지 집에 머물고 있다. 대부분 연말연시 때아닌 이재민 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주민들은 화재로 숨진 이웃에 대한 안타까움도 전했다. 20년째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50대 김모 씨는 "아기를 안고 뛰어내렸으면 얼마나 급했겠냐. 사람이 죽을 만큼은 아니었는데, 아기를 이불 속에 안고 빨리 내려왔으면 됐을텐데"라며 "아이들은 살았잖냐. 크리스마스가 평생 아버지 기일이 된 것"이라고 애통해 했다.
이어 "(희생된) 10층 주민도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물수건 들고 나갔을 것 같은데, 나가면 30초도 못 버티는 상황이었다"며 "연기 때문에 숨을 못 쉬니까 아마 못 나왔을 것 같다"고 말끝을 흐렸다.
앞서 지난 25일 오전 4시57분께 발생한 화재로 아파트 주민 2명이 숨지고 30명이 부상을 입었다. 숨진 박모(33) 씨는 4층에 살던 주민으로, 자녀를 끌어안고 창밖으로 뛰어내렸다가 머리를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아내와 아이들은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박 씨는 끝내 사망했다.
10층 주민 임모(38) 씨는 최초 신고자로, 부모와 남동생을 먼저 대피시키고 집에서 나왔으나 11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1차 부검 결과 박 씨의 경우 추락사, 임 씨의 경우 연기 흡입에 의한 화재사로 파악됐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다음날인 26일 화재 현장에 대한 합동감식을 진행했다. 현장감식 결과 301호 작은 방에서 담배꽁초와 라이터가 발견됐다. 경찰은 "전기적 요인 발화 가능성은 배제되고 인적 요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확인됐다"며 실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도봉구청은 현장감식이 끝난 뒤 아파트 청소를 진행할 계획이다. 도봉구청 관계자는 "전소가 많이 된 곳은 보험 처리와 함께 전문 청소업체를 부를 것"이라며 "피해가 적은 곳도 자원봉사 및 도시락 등 지속적으로 도움을 전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