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영봉 기자·이윤경·서다빈 인턴기자] "도현이 사고를 단초로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급발진 사고로 소중한 목숨을 잃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국회의원 분들께서 올해 안에 소정의 결과가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서 (제조물 책임법)개정을 할 수 있도록 호소드립니다."
1년 전, 급발진 의심 사고로 아들을 떠나보낸 이상훈 씨의 간곡한 호소다. 2022년 12월 6일 오후, 학교 앞에서 티볼리 차량을 타고 할머니와 함께 집으로 향하던 12살 도현이는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차량사고에 결국 목숨을 잃었다.
<더팩트> 취재진은 1주기를 앞둔 지난 11월 24일 강원도 강릉을 찾아 도현이 아버지 이상훈 씨를 만났다. 취재진이 찾은 이 씨의 집은 여전히 도현이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그는 "이사 가기 전까지는 도현이의 물건을 치울 수 없다"며 아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했다.
그와 인터뷰는 약 1시간 이상 진행됐는데, 그날의 상처는 지워지기는커녕 더욱 짙어 보였다. 도현이 아버지는 지난 1년의 시간이 어땠냐는 기자의 첫 질문에 "불러도 대답 없는 도현이를 바라보면, 그런 현실 자각 속에서 매일 심리적인 내적 갈등으로 하루하루 정말 벼랑 끝에 서 있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곁에 너무나 예쁜 딸이 항상 밝게 있어줘서, 그리고 (도현이가 소중한 생명을 잃어가면서 남겼던) 제조물 책임법(일명 도현이 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도현이 법은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 시 소비자가 아닌 제조사로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씨는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정무위)에서 방치되고 있는 도현이 법에 대해 "굉장히 답답하고 괴로운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5만 명의 동의로 발의됐고, 여야 의원 모두 대표 발의했던 법이 21대 국회가 저물어 가는 현 시점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기 때문이다.
앞서 정무위는 지난 6월 22일, 도현이 법 논의에 들어갔지만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벽에 부딪힌 후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손 놓고 있는 상태다. 공정위는 법안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급발진 입증책임을 제조사로 완전 전환한다면 제조사에 부담이 크고, 또 입법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사실상 반대 목소리를 냈다.
그는 이런 공정위의 입장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씨는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유로 국민 생명을 담보로 저울질하는 태도 자체를 정말 이해할 수 없다"며 "(공정위가)입법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데,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정부가 제조사의 입장만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입법 예가 없다면 선제적으로 해서 국민을 지켜야 함에도 그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 씨는 인터뷰 내내 법 개정을 호소했다. 그는 현재 가장 바라는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도현이 사고 계기로 급발진에 대한 이슈가 본격화됐고, 공론화됐다고 생각한다"면서, "지금 개정되지 않으면 도대체 언제 할 수 있겠냐"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정말 도현이 사고를 단초로 대한민국에서 발생되는 모든 급발진 사고의 결함 원인을 제조사가 밝힐 수 있도록, 더 이상 제조사가 방관하지 않도록 법 개정이 반드시 이뤄질 수 있도록 국회의원분께 간곡히 호소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21대 국회는 6개월도 남지 않았다. 도현이 법이 이달 내 논의되지 않으면 사실상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여야가 내년 4월 총선에 신경 쓰느라 법안 처리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래는 일문일답.
-급발진 사고 후 1년이 다가온다. 아버님과 가족들에게는 어떤 시간이었나.
오늘로 354일이거든요. 도현이가 떠나간지 1년이 다 된 시점이죠.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도현이가 어디 멀리 여행가 있는 느낌으로 살다가도, 또 불러도 대답 없는 현실을 자각하죠. 매일 심리적인 내적 갈등과 매일 싸워가면서 정말 벼랑끝에 서 있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도현이 떠나보내고 1년이 되기 한 달 전쯤에 와이프가 저에게 "한 달 남았어"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한 달 남았다는 의미를 잘 모를 것 같아서 다시 얘기해주는 거야"라고 하면서 예전에 '얼짱시대' 고 이치훈 씨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그 엄마가 1년 동안 기다렸다가, 따라서 아들 곁으로 갔던 기사를 저한테 문자로 보내면서 얘기를 했을 때 생각했어요. 한 달 뒤에 혹여나 와이프가 다른 생각을 하면, 어떻게 하나? 그때 나는 어떤 결정을 해야하지? 남아 있는 00이(도현이 동생)는?
00이가 오빠를 떠나보내면서 엄마, 아빠가 너무나 힘들어했던 상황이 너무 아팠는지 "엄마,아빠 보다 빨리 죽을 거야"라고 했어요. 혼자 남아 있으면 자기가 그 모든 상황을 견뎌내야 하는 아픔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항상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래도 우리 곁에 너무나 예쁜 딸 00이가 항상 밝게 있어줬고 제조물 책임법 개정을 하기 위해서 버틸 수 있었죠. 도현이가 소중한 생명을 잃어가면서 남겨놓은 소명이 아닌가 싶어 정말 1년을 치열하게 싸워온거 같아요.
-국회에서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6월 22일 후 논의가 없었다.
어쨌든 여야 의원들 모두가 5차례에 걸쳐 대표 발의할 정도로 개정해야 할 의지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6월 정무위 회의 이후 현재까지 아무런 진척 없이 이대로 묻혀 있는 것 자체가 너무나 답답하고 괴롭습니다.
정말 21대 국회에서 개정할 의지가 있는지 너무나 궁금해요. 왜냐하면 내년에 총선이 있으니 어떻게든 올해 안에 결과물이 나와야 내년에 본회의에 상정이 되지 않겠어요. 또 저희가 직접 국회에 찾아가서 강원도 국회의원 분들인 권성동, 허영, 박정하 의원님 모두 만나서 제조물 책임법이 개정이 돼야 한다고 간곡하게 호소도 드렸어요. 의원님들이 그러세요. 본회의까지 상정만 되면 통과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그정도로 의지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상 답보상태라 굉장히 답답함이 큽니다.
-현재 쌍용차와 법정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드셨는지?
지금까지 싸워오면서 모든 입증책임을 운전자, 소비자 유가족이 져야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들었어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모두 운전자의 과실로 결부지어 이야기하고 있어요. 공신력이 있는 국과수인데도 소프트웨어나 사고 이후에 자동차에 대한 기계적 결함이 있었는지 여부는 분석하지 않아요. 또 제동 페달 관련된 부분들만 분석을 하는데, EDR(사고기록장치)은 말 그대로 이벤트 사고기록, 에어백이 터지면서 차량의 상태를 기록하는 장치일 뿐입니다. 그 기록한 장치가 실제 운전자가 조작했는지 여부는 전혀 입증하지 못하면서 그냥 운전자의 과실, 운전자가 조작한 기록이라고 항상 결론을 내요. 과학적 증명 없이 운전자에게 누명을 씌우는 것밖에 안 되거든요. 정말 국과수는 사죄해야 돼요.
운전자 과실이 아님을 입증하는 책임은 저희, 소비자, 국민에게 있습니다. 그 모든 상황을 법원이 선정한 감정인을 통해서 감정을 진행했는데 국과수 분석 결과와는 상반된 결과가 나왔거든요. EDR 기록만을 분석한 국과수는 운전자가 기록을 조작했는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운전자가 이랬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론해서 결론을 냈어요. 그렇기 때문에 경찰에서도 국과수 분석 결과를 신뢰하지 못하고, 어머니(당시 운전자)가 형사 입건된 사건을 불송치할 수밖에 없었던 같아요.
-재판 과정에서 제조사는 국과수 뒤에 뒷짐지고 있다는데.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되면, 1차적으로 국과수에서 EDR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을 해요. 그 분석결과가 운전자 과실로 결론나면 운전자 측, 소비자인 유가족 측은 국과수 분석 결과를 뒤집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는 거죠. 쉽게 이야기하면 제조사는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어요. 아무 조치도 안 하고 있죠. 지금까지 10개월, 11개월 지나도록 제조사는 아무런 입장표명조차 하고 있지 않아요. 왜냐하면 국과수가 제조사를 대변해서 운전자 과실로 결론을 냈기 때문에 소송에서도 그 결과를 뒤집을 수 있을 만한 증거를 찾지 않는 한 그대로 결론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죠.
저희가 지금 싸우는 모든 과정에서 제조사는 뒷짐지고 있어요. 다만 국과수 분석 결과를 뒤집는 결과물이 나오기 시작하니, 이제 어떤 입장표명을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답답합니다.
-6월 22일 국회 정무위 입법 논의 당시, 공정위는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정무위 회의 내용을 보면 여야 위원들이 이제는 해야 한다고 강하게 이야기하고 계세요. 그런데 정부 측인 공정위는 두 가지 입장으로 크게 반대를 하고 있는데요.
첫 번째는 산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유이고요. 두 번째는 입법 예가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어요.
산업계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유로 국민 생명을 담보로 저울질하는 태도 자체를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요. 모든 급발진 시, 모든 제조물에 대해서 개정하자는 것이 아니에요. 저희가 요구하고 국민들이 동의했던 청원안은 급발진 시 만이라도 결함 원인에 대한 입증책임을 전환시키자는 내용이거든요.
두 번째는 입법 예가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것 자체가 초등학생도 저지르지 않을 우를 범하고 있는 거죠. 왜냐하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정부 측인 공정위에서 제조사의 입장만 대변하는 모습으로 (밖에) 보이거든요. 입법 예가 없다면 선제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먼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입법을 해서 국민들을 지킬 의무가 있는데 그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죠.
급발진 관련 연구용역 결과가 11월쯤에 나온다고 알고 있는데, 정말 정당한 절차와 공정한 절차에 따라 용역이 진행됐다면 모든 국민 앞에 그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가장 바라는 점은? 정부와 국회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도 부탁드린다.
도현이 사고 계기로 급발진 이슈가 본격화됐고, 공론화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정부와 국회에서 움직이지 않으니까, 현재 자발적으로 지자체에서 조례안을 만들고 있어요. 이미 서울시도 만들었고, 경기도의회도 입법을 예고했고, 강원도의회에서도 준비 중이고요. 또 충청도 쪽에서도 준비하고 있어요. 상위법을 만들어야 하는 국회에서 정부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지자체에서 먼저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자체가 웃기지 않습니까? 우선적으로 정부에서 먼저 발 빠르게 최우선적으로 대응하고,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너무 심각한 대한민국의 상황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정부를 믿고 어떻게 국민이 살아가야 하는지 정말 막막합니다.
정부가 움직이지 않으니, 이제는 국회에서 제발 나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조물 책임법 개정은 AI시대, 특히 레벨4라는 지능형 자율주행차량으로 다가가는 시대적 관점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법 개정안이고, 지금 공론화됐을 때 개정하지 않으면 도대체 언제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정말 도현이 사고를 단초로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급발진 사고로 소중한 목숨을 잃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급발진 시 결함 원인에 대한 입증책임을 아무런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는 소비자에게 지우는 것 자체가 정말 말이 안 되는 상황이거든요.
정말 국회의원 분들께서 올해 안에 정말 소정의 결과가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서 법 개정을 할 수 있도록 간곡하게 호소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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