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영봉 기자] 12월 6일, 오늘은 '강릉 급발진 의심사고'로 이도현(당시 12세) 군이 사망한 지 1주기 되는 날입니다.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 시 입증책임을 소비자가 아닌 제조사로 전환하자’는 내용을 담은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일명 도현이 법)이 6월 22일 한 차례 논의 후 5개월 넘도록 방치되고 있는 가운데 이를 심사하고 있는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들은 어떤 생각이고,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요?
<더팩트>는 이 질문을 시작으로 국회 정무위원 전원(위원장 포함 24명)을 대상으로 10월 4일~11월 3일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넉넉한 시간이 있었지만 절반인 12명은 "민감한 문제", "원래 설문을 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조사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응답한 의원 12명 중 11명은 '도현이 법'에 찬성했습니다. 1명은 '입장보류'였습니다.
문제는 21대 국회 시계가 6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이라는 겁니다. 도현이 법이 이대로 방치된다면 폐기가 불가피합니다. 물리적 시간이 촉박한데다 여야가 내년 4월 총선을 준비하느라 법안 처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데다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요청한 설문에 의원 절반이 조사 거부로 일관한 것은 도현이법 통과에 애초 의지가 없었던 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전문가들은 급발진 의심 사고 시 소비자가 결함을 입증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며, 입증책임 전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조물과 관련된 연관법은 물론 제조사의 입김 등으로 21대 국회에서 처리가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해당 법안을 심사하는 정무위 의지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참고로 도현이 법은 지난해 12월 6일 강원도 강릉 홍제동에서 쌍용차(현 KG모빌리티)인 티볼리 급발진 의심 사고로, 12살 꿈 많고 해맑았던 이도현 군이 가족과 생이별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아버지 이상훈 씨가 도현이를 온전히 애도하지 못한 상태에서 급발진 사실을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고, 억울함을 토로한 상훈 씨의 청원에 국민 5만 명이 동의하면서 여야 모두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 11명만 처리 의지 확실…"제조사 입증책임 져야"
<더팩트>는 ‘도현이 법’이 수개월째 방치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무위 위원들이 과연 이 법안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고, 처리 의지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 달 동안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여야 모두가 발의한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절반 의원들은 무관심에 가까울 만큼 소극적이었습니다.
설문조사 질문은 이렇습니다. △자동차 급발진 문제에 대해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 △급발진 입증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도현이 법을 찬성·반대 하는지 △찬성 의견이라면 21대 국회에서 처리할 의지가 있는지 △처리할 의지가 있다면 언제까지 처리해야 하는지 △반대 의견이라면 이유는 무엇인지 등 6가지였습니다.
설문에 응한 의원은 민주당에서 △김종민(야당 간사) △민병덕 △박성준 △박재호 △윤영덕 △최종윤 의원 등 6명이고, 국민의힘에서는 △강민국 △최승재 △김희곤 △송석준 의원 등 4명이었습니다. 이어 진보당 △강성희, 무소속 △양정숙 의원이 설문에 답했습니다. 다만 송석준 의원의 경우 특별한 설명 없이 전 문항에 '입장보류'를 택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설문에 응한 11명의 의원들은 급발진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고, 도현이 법에 대해 찬성 입장을 보였습니다. 또 21대 국회에서 도현이 법을 처리할 의지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를 자세히 살펴보면 ‘급발진 문제에 대해 어떻게 인지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매우 심각하게 인지한다는 의원이 7명(김종민·박재호·윤영덕·최종윤·강민국·강성희·양정숙)으로 가장 많았고, △심각하게 인지한다는 의원은 4명(민병덕·박성준·김희곤·최승재)이었습니다.
‘급발진 의심 사고 관련 입증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질문은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을 제외한 10명이 제조업자에게 입증책임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김 의원은 제조업자에게 입증책임이 있다고 답했지만, ‘일부’라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이어 11명의 의원 모두 21대 국회에서 도현이 법을 처리할 의지가 있다고 답했는데요. 다만 처리 시기를 두고는 차이는 있었습니다. 문항에는 내년 4월 총선을 고려해 △2023년 12월 전 처리 △2024년 1월 △2024년 2월 등 세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습니다.
올해 12월 전에 처리해야 한다는 의원은 8명(김종민·민병덕·박성준·박재호·윤영덕·강민국·강성희·양정숙)으로 가장 많았고, 2월 처리를 선택한 의원은 3명(최종윤·김희곤·최승재)으로 응답한 모두가 21대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박성준 민주당 의원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6월 22일, 도현이 법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과 관련 "비전문가인 사고 피해자나 유가족이 ‘전문가’인 차량 제조사를 상대로 기술적인 문제인 급발진을 증명하라는 현행법은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일일이 자료를 수집해 급발진을 증명해야 하는 소비자와 그 자료를 반박해 백전백승을 거두고 있는 제조사 사이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도 "원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해외 사례를 참고하고, 특히 소비자의 일방적 피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민감한 문제"…조사에 응하지 않은 절반의 의원들
지금부터는 설문을 거부했거나 응답하지 않은 의원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민주당에서는 △강훈식 △김성주 △김한규 △이용우 △오기형 △조응천 △황운하 의원 등 7명이며, 국민의힘은 △윤한홍(여당 간사) △유의동 △윤주경 △윤창현 의원 등 4명이었습니다. 정무위 구성상 야당(15명, 위원장 제외), 여당(8명) 등 2:1 비율인 것을 감안하면 응하지 않은 비율은 비슷합니다. 그리고 백혜련 위원장 측은 "위원장이라는 이유로 입장을 내기 곤란하다"고 밝혔습니다.
설문에 응하지 않은 의원 중에는 "확인 중, 검토 중"이라고만 반복하고 끝내 회신하지 않은 의원실이 많았는데요. 해당 의원실은 민주당 △강훈식 △김성주 △이용우 △황운하, 국민의힘 △윤한홍 △유의동 △윤주경 의원실 등입니다.
이외 민주당 김한규·오기형·조응천 의원실은 "원래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답했습니다. 다만 김 의원실 측은 취재진과 통화에서 "의원님은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에 대해 공동 발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조 의원실 보좌진은 질문 문항에 대해 "기본적으로 제조사에게 입증책임을 상당 부분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단순히 제조사에 입증책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문제는 아니다. 저희는 다른 해법으로 법안을 발의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국민의힘 A 의원은 취재진과 통화에서 "설문조사 하기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A 의원은 "법을 다뤄야 하는 입장에서 저더러 의견을 표출하라고 하면 아무리 그래도 찝찝하다. (중간 생략) 복잡한 문제라서 조금 노골적으로 입장을 내긴 어렵고, 또 민감한 문제다. 조금 양해를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도현이 법이 21대 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느냐입니다. 정무위에서 한 차례 법안소위가 더 열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도현이 법이 안건에 포함될지는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정무위 소속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언제쯤 도현이 법이 논의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한 차례 더 법안소위가 열릴 것 같다"면서도 "사실상 마지막 정기국회다 보니, 저희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려고 하고 있다"고만 답했습니다.
한편 취재진은 △10월 4일 1차로 정무위 소속 의원 전원에게 이메일로 ‘급발진 문제 및 도현이 법 동의 여부 설문지’를 보냈고, 의원실에 전화해 도착 확인 및 일주일 내 회신을 요청했습니다. 이후 설문에 응하지 않은 의원들을 대상으로 △11일 2차 회신 요청 △30일 3차(11월 4일까지) 회신을 요청한 바 있습니다.
◆ 787건 중 급발진 인정은 ‘제로’…전문가들 "입증책임 전환해야"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 13년간 급발진 의심 사고 신고된 건수는 787건, 하지만 이 많은 의심 사고 중 급발진으로 인정된 것은 단 한 건도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입증책임이 비전문가인 소비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급발진 의심 사고 시 소비자가 결함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자동차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제조사에게 있는데, 이를 영업비밀이라고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김필수 자동차급발진연구회 회장 겸 대림대 교수는 취재진과 통화에서 "(급발진 의심 사고 시 입증책임이)소비자에게 불리한 구조로 되어 있다"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경일 교통전문 변호사도 "급발진 문제를 입증하라는 것은 소비자에게 너무 부담"이라며 "현 체계에서는 소비자에게 위험 부담을 다 떠넘기고 있는데, 이 위험 부담을 소비자가 아닌 제조사가 가져가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습니다.
정 변호사는 "제조사들은 여기서 이익을 창출하고 있고, 또 (결함에 대해서는)불량품으로 처리해 비용처리도 할 수 있지만, 반면 운전자는 인생이 파탄나고, 교도소까지 가야 한다"며 "그런 차이를 봤을 때 위험부담은 제조사가 가져가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습니다.
◆"제조사도 원인규명 공동책임 명시가 현실적" 전문가 의견도
다만 도현이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연관법이 얽혀있고, 제조사 로비 등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는 회의적 시각마저 나온 겁니다. 국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현실을 꼬집는 말입니다.
김필수 교수는 "소비자 입증책임을 바꿔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소비자단체 등이 이야기하는 미국식은 우리나라에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왜 불가능하다는 걸까요. 김 교수는 "우리나라 제조물 책임법 자체가 소비자 및 사용자가 입증해야 하는 것이 기본인데, 법 하나만 바꿔서는 안 되는 문제고, 또 자동차 제조사의 로비같은 것도 있기 때문에 실제 바꾸는 건 무리수"라고 답했습니다.
전문가인 그가 이 같은 주장을 하는 데는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으로 해석됩니다.
김 교수는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비롯해 집단소송제 등 아예 소비자 중심"이라면서도 "(반면) 기반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법만 바꿔서는 되지 않는 구조다. 대표적인 예가 신차 교환·환불프로그램 레몬법(자동차관리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참고로 2019년부터 시작된 레몬법은 차량 및 전자제품에 결함이 있을 경우,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교환, 환불, 보상하는 제도인데요. 시행 4년 동안 2102건(2023년 6월 기준)이 신청됐지만,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 중재를 통해 교환·환불 판정이 이뤄진 건수는 단 15건에 불과했습니다. 하자 발생 시 소비자가 이를 증명하고 보상받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얘깁니다.
그는 로비 압박이 심하냐는 질문에는 "압박 정도가 아니다"며 "국토부 자체에서도 급발진이 없다고 이야기하던 부서다. 예전에는 (관련)세미나까지 방해를 했다"고 경험담까지 제시했습니다. 이어 "중요한 부분은 법을 바꾸면 되지 않느냐 하는데, 법을 바꿔도 시행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또 법이 시행돼도 (제조사가) 이 핑계, 저 핑계되면 결국 아무것도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우선 구멍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블랙박스 영상, EDR(사고기록장치)과 맞지 않는 (급발진 의심)사건의 경우, ‘자동차 제조사도 그 원인을 밝히는데 공동 책임을 진다’고 법을 바꾼다면 훨씬 운신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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