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기피' 법원 벽 높다…5년간 인용률 0%대


'불공정한 재판' 기준 모호해 기피 인용에 부담
법원 '제식구 감싸기' 비판도…제도 보완 목소리

쌍방울그룹 대북송금에 연루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최근 재판부가 검찰의 유도신문 및 기소되지 않은 사실에 관한 증인신문을 허용하는 등 예단과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수원지법 형사11부 법관 세 명에 대한 기피를 신청했다./이새롬 기자

[더팩트ㅣ김시형 기자] 최근 5년간 형사 사건 법관 기피‧회피‧제척 신청 인용률이 0.6%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청 자체에 민원성 목적이 있다는 문제도 있으나 법원의 '제식구 감싸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전국 법원에 접수된 형사사건 기피·회피·제적 신청 1283건 중 인용은 8건(0.6%)에 그쳤다. 2019년과 2021년엔 단 한 건도 인용되지 않았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법관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을 때 검사 또는 피고인 등이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할 수 있다.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연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최근 "재판부가 검찰의 유도신문 및 기소되지 않은 사실에 관한 증인신문을 허용하는 등 예단과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수원지법 형사11부 법관 세 명에 대해 기피 신청을 했지만 항고심에서 재차 기각돼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앞두고 있다.

여신도 성폭행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JMS 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은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법관 기피 신청을 했으나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됐다. 이에 최근 같은 재판부를 상대로 또 기피신청을 냈으나 기각됐다. 검찰은 최근 재개된 재판에서 정씨 측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기피를 신청해 오로지 재판 지연을 목적으로 사법부의 판단을 경시했다며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불공정할 염려' 기피신청 기준 자체 모호성

이같이 법원이 기피신청 인용에 인색한 이유는 기피신청 기준의 모호성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불공정할 염려가 있다'는 기피 신청 기준이 추상적이라 주관적인 판단이 될 수 밖에 없다"며 "판사 입장에서 동료가 불공정할 염려가 있다고 '주관적 판정'을 내리기는 부담"이라고 설명했다.

법원은 그간 재판부와 사건 관계자의 관계가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객관적 근거'가 매우 분명할 때만 인용 결정을 내려왔다. 2018년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이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의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재판장이 삼성그룹과 연고가 있다며 제기한 기피 신청이 대표적이다. 임 전 고문의 기피 신청은 한 차례 기각됐으나 대법원이 불공정 재판을 의심할 '객관적 사정'이 있다고 판단해 재판부가 변경됐다.

기피 신청에 '민원성' 사유가 많다는 배경도 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기피 신청 사례 대부분이 민원성 기피"라며 "일종의 불만 제기 창구나 소송절차상 전략의 목적으로 제기하는 경우가 많아 법적으로 기각률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5년간 형사 사건 법관 기피‧회피‧제적 신청이 1283여건에 달하지만 인용률은 0.6%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새롬 기자

◆각하 후 회피 신청 편법…"제 식구 감싸기" 비판도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도 있다. 법원이 일단 기피 신청을 각하하면 해당 법관이 회피를 신청한 뒤 재판부를 재배당하기도 한다.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019년 법관의 변칙적인 회피신청을 방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당시 대표 발의자였던 이춘석 전 의원은 "법관이 대상사건을 미리 회피하는 변칙적인 방법으로 기피·회피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작은 비판도 용인하지 않는 사법부의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에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개정 법률안의 핵심은 법관 기피신청 결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해당 법관이 회피신청을 할 수 없도록 해 기피권을 우선 보장하는 내용이었지만 결국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일각에서는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단과 같이 제3의 기관이 함께 기피 여부를 검토하는 방안도 제기되지만 법조계 우려도 만만치 않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독립성이 부여되는 사법부가 아닌 다른 기관이 기피 여부를 함께 판단한다면 공정성을 누가 담보할 수 있겠나"라며 "사법부가 자체적으로 자정 능력을 갖춰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현행법상 법관을 기피할 순 있지만 검사 기피 규정은 없다. 형사절차 공정성 확보를 위해 사건과 일정한 관계가 있는 검사는 직무수행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사 기피 규정 신설 필요성 자체엔 공감한다"면서도 "다만 정치적으로 악용 소지가 없도록 판단 기준과 절차를 잘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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