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황지향 기자] 협심증을 앓는 연인을 폭행해 혼절했는데도 깨워 다시 폭행한 '데이트 폭력'에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가해자가 반성하고 있다거나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돼 풀려나기도 한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데이트폭력을 방지하려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남부지법은 상해·폭행·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된 A(50) 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 씨는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 모 아파트 자택에서 동거 중인 연인 B씨를 수차례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B씨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양손으로 꺾어 부순 혐의도 있다.
A씨는 같은해 12월에는 폭행으로 B씨가 혼절하자 물을 먹여 깨운 뒤 다시 때렸다. B씨는 평소 협심증을 앓고 있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저지른 이 사건 범행은 그 횟수 및 내용에 비춰 죄질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피해자가 사건 이후 피고인과의 동거 생활을 유지하고 있고 평온한 가정생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취지의 탄원서를 수회에 걸쳐 제출하고 있으며 피고인이 현재 반성하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같은 법원은 특수주거침입·특수재물손괴·폭행 혐의로 기소된 C(63) 씨에게는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C(63) 씨는 지난해 5월 교제 중인 연인 D씨의 서울 용산구 집에 돌을 들고 들어가 TV를 부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D씨의 뺨과 머리 등을 때린 혐의도 받았다.
공소가 제기된 후 D씨가 C씨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해 폭행 혐의는 공소기각 판결했다. 형법상 폭행은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도 "피고인이 범행을 자백한 점, 피고인이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했고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 유리한 정상을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는 7만790건으로 4년 전에 비해 39.9% 증가했다. 데이트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는 1만2828명으로 전년 대비 30.6% 늘었다.
이처럼 지속·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데이트폭력 사건을 줄이기 위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국내 사법체계가 데이트폭력을 범주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처벌 불원이 적용되지 않고 친밀한 관계를 더 엄중하게 들여다 보는 데이트폭력 처벌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연인 간의 관계에서 상대방이 용서를 했는데 국가가 개입해서 형벌을 세게 내리는 것이 바람직한지 재판부의 갈등이 있었을 것"이라며 "현재 근거 법률이 없어 일반 형법으로 다루면 처벌 수위가 세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연인의 친밀한 관계는 그만큼 안전하고 위해를 당할 가능성이 적은 관계로 이해해야 하는데 이것이 오히려 하나의 관용의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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