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종석 헌재소장 후보자, 평판사 시절 '영장주의 위배' 정황


인천지법 시절 압색 후 영장 발부
전교조 인천지부 영장도 반발 불러
"입헌주의 기본…헌재소장 자격 의심"

차기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종석 헌법재판관이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노란봉투법, 방송3법 권한쟁의심판 사건 및 헌법소원 심판 사건 등에 대한 선고를 하기 위해 자리에 착석해있다. /뉴시스

[더팩트ㅣ정채영 기자] 이종석(62·사법연수원 15기)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평판사 시절 위법 소지가 있는 영장 발부에 관여한 정황이 나타났다. 초임 판사였고 형사사법 절차가 혼란스러웠던 권위주의 정권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헌법 가치인 '영장주의'와 '언론·출판의 자유'를 수호해야 할 헌재소장으로서 아쉬운 이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더팩트> 취재에 따르면 인천시경은 1989년 4월10일 영장 없이 인천대학교 인근 인문사회과학서점 '만두리서점' 등 시내 5개 서점에서 서적 166권을 압수하고 만두리서점 주인 김모(당시 28세) 씨를 연행한 뒤 영장을 발부받았다. 당시 영장을 발부한 판사는 인천지법에 근무하던 이종석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였다.

만두리서점은 같은 해 7월 31일 다시 영장 없이 압수수색을 당했고 김 씨는 국가보안법 위반(이적표현물 소지 및 판매) 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 씨와 알고 지냈던 인천대 출신 A씨는 "김 씨가 구속됐다가 석방된 후 환영회를 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 사건이 발생한 1989년은 문익환 목사 방북 이후인 4월 3일 국가안전기획부·검찰·경찰·보안사가 공안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 이른바 '공안정국'이 조성됐던 시기였다. 특히 검·경·사법부가 압수수색·구속영장을 남발한다는 논란이 거셌다. 출판사와 인문사회과학서점은 집중 단속 대상이었다. 수사기관은 영장 없이 서점을 압수수색하고 관계자를 연행한 뒤 법원이 뒤늦게 영장을 발부해주는 등 위법 시비가 잇달았다.

당시 한국출판문화운동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그해 출판사·서점 압수수색은 195차례 실시돼 4만5000여권의 서적이 압수됐다. 출판인·서점 관계자 44명이 구속됐는데 1년 전 구속자 10명의 4배가 넘었다. 같은 해 대법원 국정감사에서도 영장 문제가 쟁점이 돼 법원행정처장이 "영장이 남발되고 사법부가 5공화국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의원들의 충고를 국민의 목소리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같은 이 후보자의 영장 발부는 헌법 제12조에 명시된 '영장주의' 원칙 위배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12조 1항은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한다', 3항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밝힌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장주의란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근대 입헌주의의 기본적인 틀로 1948년 헌법이 만들어질 때부터 맥을 같이 한 것"이라며 "헌법재판소장뿐만 아니라 재판관으로서도 자격이 의심될 만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서점 압수수색과 서적상 연행은 헌법 제21조에 규정된 언론·출판의 자유와도 충돌 소지가 있다. 2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명시한다.

이종석 후보자가 영장을 발부한 만두리서점이 있었던 인천대 인근 한 건물. 만두리서점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문을 닫은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다른 상점이 들어서 있다./정채영 기자

만두리서점 영장과 같은 해 이 후보자가 발부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인천지부 압수수색 영장도 논란이 됐다.

<더팩트>가 입수한 전교조 인천지부의 1989년 9월 4일자 '전교조 인천 지부 사무실 침탈 사건에 대한 성명서'를 보면 "지난 7월 7일, 7월 9일에 이어 9월 1일 저녁 9시 20분, 인천중부경찰서는 전투 경찰 1개 소대와 사복 경찰 등 60여 명을 투입, 인천지부사무실을 또다시 무참히 유린했다. 인천지방법원 판사 이종석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에 의거 96종 1만4383점을 압수당했고 인천지부 사무국장 등 10여 명이 연행됐다"고 적혔다.

이종석 당시 판사와 경찰에 대해서는 "무엇이 시위용품이고 불은 유인물인지 명확한 근거 제시도 없이 영장을 발부한 판사는 훈장(?)을 받을 만한 명판사요. 압수 수색은 입회자의 입회하에 실시돼야 함에도 입회자의 접근을 봉쇄한 채 회계장부, 비망록, 우편물까지도 입수해 간 경찰들은 역시 민중의 지팡이(?)로 손색이 없으니 도둑을 잡는데 어떤 명분을 내질 것인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이 실렸다.

당시 전교조 인천지부는 신맹순 지부장이 전교조 활동을 이유로 전국 최초로 해직·구속된 상태였다. 현장에서 압수수색을 목격한 B씨는 "사복 경찰들이 들이닥쳐 캐비넷에 있던 물품을 포함해 집기를 다 가져갔다"며 "지부 소속 일부 교사들은 서울로 집회를 하러 간 날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사무실에 남아있던 교사·대학생들을) 굴비 엮듯 줄줄이 연행해갔다. 영장 제시도 없었다"며 "가져간 물건들도 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1989년 5월 전교조 출범 때 여론은 우호적이었다 국회 문화공보위원회가 전국 초중고 교원 1063명과 학부모 800명 등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교원 84.1%, 학부모 53.7%가 교원노조 설립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반면 정부는 교사 100여명을 구속하고 노조 탈퇴를 거부한 교사 1500여명을 대량 해고해 '전교조 탄압'이 사회적 논란이 된 시기다.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전교조 대량 해직 사태를 '중대한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정부에 사과를 권고했다. 해직교사들은 2020년 헌법재판소에 강제해직으로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청구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각하됐다.

이종석 후보자는 1991년 2월까지 인천지법에 근무한 후 서울민사지법으로 옮겼다. 인천은 노동·학생운동이 활발했던 지역이라 이 후보자가 발부한 영장 중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경우는 더 있었을 가능성도 남는다.


chaeze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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