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정채영 기자] 이종석(62·사법연수원 15기)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시절 '신앙심이 깊다'는 이유로 자백한 브로커의 진술 신빙성을 인정해 유죄 판결 했지만 대법원에서 무죄로 뒤집혔던 것으로 나타났다. 신앙심을 근거로 진술 신빙성을 판단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라는 게 법조계 평가다.
13일 <더팩트>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2007년 1월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는 이른바 '현대차 로비 사건' 선고 공판에서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에게 징역 6년과 추징금 14억5000만원을 선고하는 등 피고인 8명 중 7명을 유죄로 판결했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1명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장은 이종석 후보자(당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였다.
이 사건은 김동훈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가 변 전 국장과 박 전 부총재 등을 상대로 현대차그룹의 부채 탕감을 청탁하며 총 41억 6000만의 뇌물을 전달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재판의 관건은 이들에게 뇌물을 줬다고 자백한 '브로커' 김동훈 전 대표의 진술 신빙성이었다. 재판부는 변양호 전 국장의 경우 김 전 대표가 뇌물을 줬다고 주장하는 시점·장소에 '알리바이'(현장부재증명)가 입증돼 무죄를 선고했다.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는 김 전 대표 진술을 믿을 수 있다며 모두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김 전 대표)의 신앙심 등을 비춰 볼 때 허위진술을 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다. 이 판결문에는 '신앙'이라는 단어가 9번이나 등장한다.
이 판결에는 김 전 대표의 신앙심이 비중있게 다뤄졌다. 재판부는 "피고인 김동훈은 1990년대 중반부터 기독교대한감리회 A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현재 A교회 권사로 재직 중이며 AP채무조정 로비가 끝난 이후부터는 신앙생활에 힘썼다"며 "성경을 수회 통독한 끝에 2003년 8월경부터는 구약성경의 원어인 히브리어 신약성경의 언어인 헬라어를 독학으로 공부해 왔고, 그 과정에서 2004년부터 A교회 소식지에 성경공부라는 제목으로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성경을 해석한 글을 기고했다"고 설명한다.
또 "처에게도 존댓말로 대화를 하는 등 사람과 대화할 때 항상 존댓말을 사용하는 어투가 몸에 배어 있다"며 "피고인 김동훈의 경력, 신앙심, 가족관계, 범죄전력 등에 비추어 허위진술을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변 전 국장을 포함한 모든 피고인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반면 대법원은 "여러 차례 금원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만의 진술만을 내세워 함부로 나머지 일부 금원 수수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봐야 한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김 전 대표의 진술 번복 등을 두고 온전히 믿을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 김동훈의 경력, 신앙심, 가족관계, 범죄전력 등에 비추어 피고인 김동훈이 허위 진술을 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원심의 판단은 그대로 수긍하기 어렵다"며 "로비자금을 전달한 자로서는 신뢰성이 있는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로비 자금을 전달하지 않고 착복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2009년 9월10일 검찰의 재상고를 기각하면서 김 전 대표를 제외한 피고인들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현대차 로비 의혹'은 뇌물공여자인 김 전 대표의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였던 사건으로 평가된다. 유·무죄를 가를 진술의 신빙성을 신앙을 근거로 판단하는 일은 드물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로비 사건은 진술이 직접 증거이거나 유일한 증거일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 이 진술 신빙성을 판단할 때는 객관적인 증거에 부합하지 않는다거나 납득하기 어렵다는 등 사실관계를 근거로 한다"며 "신앙심을 운운하며 판결문을 쓰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여러 차례 신앙을 언급하는 건 부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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