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의종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내홍을 겪고 있다. 인권위원장과 상임위원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각각 고발되면서 인권위가 '인권의 최후 보루'가 '이념 전쟁터'가 됐다는 말이 나온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송두환 인권위원장과 김용원 상임위원에 대한 고발 사건을 검토하고 있다. 발단은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제기한 '경찰의 수요시위 방해에 대한 부작위' 진정이다. 정의연은 지난해 1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수요시위와 관련해 "일부 세력이 몰려와 명예훼손·모욕·음해한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당시 인권위는 긴급구제를 결정했다.
지난 2월 검사 출신의 김용원 상임위원이 임명되면서 상황은 변했다. 김 위원이 위원장으로 참여한 인권위 침해구제제1소위원회는 지난 8월 정의연 진정을 심의하는 회의를 열고 정의연의 진정을 기각 결정했다. 김 위원 등 2명은 기각, 김수정 상임위원은 인용 의견을 냈다.
김수정 위원은 기각 결정 선언에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인권위 조사총괄과와 침해조사국 등은 지난 9월 "김용원 위원이 선언한 기각 결정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취지로 해명자료를 냈다.
인권위법상 진정 사건은 6개 소위원회에 배당되며 소위별로 3명 위원이 심의한다. 소위원회 회의는 구성위원 3명 이상 출석과 3명 이상 찬성으로 의결해야 한다. 전원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진정 사건은 11명 인권위원 전원이 참여한 전원위원회에 올라간다.
김용원 위원은 조사총괄과 등이 허위공문서를 작성했다고 반발하며 송 위원장에게 해명자료 작성을 담당한 조사총괄과장 등에 인사조치를 요구했다. 소위도 열지 않고 있다. 이에 인권재단 사람 박래군 상임이사는 지난 2일 김용원 위원을 직무유기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반면 보수 성향 변호사 단체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은 송 위원장 등 4명을 직권남용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송 위원장 등이 기각 결정을 결정을 무효화하려 하거나 후속 절차로 이행하지 못하게 했다는 주장이다.
최근에는 김 위원과 이충상 상임위원이 이른바 '자동 기각' 규정 개정까지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갈등은 심화하고 있다. 인권위원 1명만 반대해도 진정을 기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규칙 개정이다. 규칙 개정안은 조만간 전원위에 올라가 논의될 예정이다.
진보 성향 변호사 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통해 "구체적인 근거 없이 반대 의견만으로 진정 사건에 대한 논의 자체가 가로막힐 것이고, 빠르게 사건 처리만 하는 관료적인 기구로 전락시킬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자동 기각 규칙이 '인권의 최후 보루' 인권위 설립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갈등이 깊어지면서 인권위는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인권위 공무원노동조합 관계자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다. 고발 대리전까지 펼쳐진 상황"이라며 "이충상·김용원 위원은 반인권적 행동을 하며 인권위를 망치려고 하는 것 같다. 부적절한 행위가 이어질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송 위원장이 중재 역할을 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갈등 해결 주체인 위원장이 소극적이란 의견이다. 다만 송 위원장이 나설 경우 오히려 갈등이 커질 수 있어 중재자 역할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도 있다.
김 위원은 최근 군 사망자 유가족을 특수감금 혐의 등으로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이에 앞서 유가족은 김 위원이 고 윤승주 일병 사망 관련 진정 사건을 각하하자 인권위를 찾아가 시위를 벌였다.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김 위원이 본인 명의로 총 8차례에 걸쳐 낸 보도자료에 법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인권위 사무처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상임위원 명의 인권위 로고 등이 적용된 보도자료 배포에 법령 및 규정 등 근거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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