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의종 기자] 해병대 고(故) 채모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불거진 군 사건의 민간 이첩 기준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모호한 이첩 기준을 바로 잡기 위해 관련 법령의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수사의 쟁점은 군사법원법과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에 따른 사건 이첩 과정에서 국방부 관계자들의 직권남용이 있었는지 여부다.
당초 해병대 수사단은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기재된 사건기록을 경찰에 넘겼다. 그러나 국방부 검찰단은 이를 회수하고, 7포병대대장과 11포병대대장 등 2명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다시 넘겼다.
국방부 검찰단은 사단장 등에 혐의가 있다는 내용을 담은 사건기록 이첩을 보류하라는 명령을 어겼다며 항명 혐의로 해병대 수사단장이던 박정훈 대령을 불구속 기소했다. 박 대령은 수사 과정에 외압이 있었다며 국방부 검찰단장과 법무관리관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국방부와 박 대령 측이 첨예한 입장차를 보이는 이유는 군사법원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건 이첩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시행된 개정 군사법원법 2조 2항에는 △군내 성범죄 △범죄에 의한 군인 사망 사건 △입대 전 범죄 등 3대 범죄 수사와 재판은 민간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담당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군이 사건 발생 전 조사를 벌여 혐의점이 발견되면 민간에 이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군사법원법이 개정되면서 만들어진 대통령령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 7조에 담긴 '혐의점이 발견되면 지체 없이 이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지체 없이'의 기준과 시기 등을 놓고 다양한 유권해석이 나올 수 있다.
박 대령의 법률대리인 김정민 변호사는 "3대 범죄 이첩에 대한 규정에 '지체 없이'라는 내용을 놓고 다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며 "이첩 대상 범죄는 수사지휘 대상에서 뺀다는 내용 등이 포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군을 포함해 민간 수사기관과 전문가들은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관련 법령에 지체 없는 이첩의 기준이 명확치 않아 혼선을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이다.
국방부는 지난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군사법원 대상 국정감사에서 "이첩 관련 기준이 통일돼 있지 않아 군 수사기관 혹은 업무 담당자별로 입건 전·후 이첩과 사건인계서, 인지통보서, 기록 인계 방식으로 이첩 등 시기와 방법에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도 "사망에 원인이 되는 범죄 정황이 확인되면 즉시 이첩하는 게 맞다"면서도 "기본적인 규정 자체는 한계가 있다. 향후 입법부의 구체적인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군 수사기관이나 군사법원의 수사 및 재판 권한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까지 있다. 군법무관 출신 강석민 변호사는 "이번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은 군사법원법 개정 취지에 반한 것으로 결국 민간에서 전부 담당하면 되는 일"이라며 "군사법원이 존재하면 결국 지휘부의 영향을 받지 않기는 어려운 맥락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채 상병과 함께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렸다가 구조된 A 병장 측 법률대리인이다. A 병장은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사단장을 고발했다.
다만 군사법원법 재개정 논의가 당장 이뤄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수사와 채 상병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이라 수사 결과가 나온 뒤에야 본격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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