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시형 기자] 문재인 정부 당시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에게 사직을 강요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 측이 "사표를 내라고 지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 전 장관에게 사퇴를 종용받은 의혹을 받는 손광주 전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이사장은 "정부가 바뀌면 사퇴는 관례라고 했다"며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김승정 부장판사)는 18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받는 조 전 장관의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이날 공판에는 조 전 장관에게 사퇴를 종용받은 의혹 당사자인 손광주 전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이사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조 전 장관은 2017년 7~8월 당시 임기를 1년여 남긴 손 전 이사장의 사퇴를 종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손 전 이사장은 "천해성 외교부 차관이 티타임에서 '정권이 바뀌었다'며 '정권이 바뀌면 산하 공공기관장은 새 정부에 협력하기 위해 사퇴를 하는 게 지금까지의 관례였다'고 사퇴를 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며 "조 전 장관의 뜻이라기 보다는 '문 정부의 뜻'이라고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조 전 장관에게도 직접 '사퇴 종용' 전화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손 전 이사장은 "천 차관과의 티타임 이후 조 전 장관이 '9월1일 새 회기가 시작되니 그 전까지는 거취 문제가 정리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투쟁을 하며 싸울 건지, 어떻게든지 와신상담해 후일을 기약할지 고민을 했지만, 북한 인권분야에서 20년 넘게 헌신한 사람으로서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불편해 결국 사표를 제출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예산 심의 당시 업무추진비가 50% 삭감되는 등 국회의 압박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손 전 이사장은 "과거 대북통일정책이나 국회의원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는데, 국회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시각이 있었다"며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내 면직 없이는 외교통일위원회 예산 심의를 진행할 수 없다고도 했고, 결국 업무추진비 10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삭감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조 전 장관 측은 "손 전 이사장에게 직접 사표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한 사실도 없고, 손 전 이사장의 사의를 목적으로 천 차관에게 지시한 적도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손 전 이사장을 해임시킬 수 있는 권한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손 전 이사장에게 "임기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했다면 조 전 장관에게 사직시키거나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느냐"고 묻자 손 전 이사장은 "강제로 사직을 시킬 순 없었지만 (사임하지 않았다면) 여러 가지 압박이 있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통일부 차관은 거취에 대해 '입장 확인'을 했을 뿐 손 전 이사장이 '사임 요구'로 해석한 것이라는 논리도 폈다. 변호인은 "천 차관이 '정권이 바뀌면 기관장의 사퇴가 관례'라고 말했다면, 거취에 대한 입장을 확인한 건데, 이를 사임 요구로 해석해서 받아들인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이에 손 전 이사장은 "나가줬으면 한다는 분명한 의미였다"고 맞섰다.
조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에게 사직을 강요했다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지난 1월 불구속 기소됐다. 이와 별개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등도 산자부 및 과기부 산하 공공기관장들로부터 정당한 사유 없이 사직서를 제출받고 인사수석실에서 미리 내정한 사람들에게 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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