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소현 기자] '오전 8시까지 집회에 오는 게 힘들지 않을까?', '다 함께 버스를 대절해서 올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볼 때마다 드는 궁금증이다.
전장연은 매일 오전 8시 장애인권리예산·권리입법 쟁취를 위한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한다. 지난 2021년 12월부터 지난 12일까지 427일 넘게 진행했다. 최근에는 '퇴근길 버스 탑승 선전전'도 한다.
집회로 출근하는 심정은 어떨까. 투쟁을 마친 뒤 퇴근하는 심정은 또 어떨까. <더팩트>는 지난 1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서울장차연) 개인 대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수미 씨의 하루를 동행해 봤다.
#04:30 기상
이수미 씨는 5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41년을 집안에서 살았다. 이후에도 시설에서 16년을 살다가 지난 2017년 탈시설했다.
수미 씨는 매일 오전 4시30분에 일어난다. 집 근처 길음역에서 선전전이 열리는 국회의사당역까지는 1시간 정도가 걸린다.
준비시간을 고려해 2시간30분 일찍 일어난다.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세수하고 옷을 입고, 약을 먹는다. 비장애인이라면 10분도 안 걸릴 일이지만 수미 씨는 2시간이 걸린다.
알람이 울리자 이씨의 집에서 당직근무를 한 활동지원사 김모 씨가 수미 씨를 깨운다. 세면을 도운 뒤 옷을 입히고 휠체어에 수미 씨를 올린다.
수미 씨를 편안한 자세로 앉히기까지는 리프트를 이용해 여러 차례 들어올려야 한다. 김씨는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 그냥 되는 게 아니다"라며 "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06:20 집을 나서는 시간
집을 나선 수미 씨는 잠이 깨기도 전에 아파트 내리막길을 달린다. 전동휠체어 덕(?)에 10분 만에 길음역에 도착했다. 3번 출구 앞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성신여대입구역 방면 1-4 승강장으로 향했다.
능숙했다. 수미 씨는 "어디에 엘리베이터가 있고, 어떤 역에서는 리프트를 타야 하고, 어느 위치에서 열차를 타야 엘리베이터와 가까워서 동선이 편하다라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3년이 걸렸다"며 "단순히 '잘 다닌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오랫동안 노력한 것"이라고 말했다.
1-4 승강장을 고집하게 된 것도 '노력의 결과'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내릴 때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간격이 좁고 단차가 낮기 때문이다.
#07:30 국회의사당역 선전전 장소 도착. 08:57 선전전 종료. 09:06 해산.
3번의 환승(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과 종로가역, 여의도역)을 거쳐 수미 씨는 국회의사당역에 도착했다.
"제가 기독교인인데, 오늘 하루도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경찰과 대치해야 하는 집회가 있을 때는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전장연에 대한) 시민들의 눈치도 안 좋아지는 추세고요. 그래도 장애인의 삶이 더 좋아져야죠." 수미 씨에게 출근길 심정을 물으니 웃으며 대답한다.
이날 선전전에는 수미 씨를 포함해 6명이 참여했다. 오전 8시44분께 '집단수용 장애인 거주시설 폐지하라', 'UN 탈시설 가이드라인 준수하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열차에 몸을 싣는다.
#10:00 대의원회
수미 씨는 오전 10시에 노들센터에서 열리는 대의원회 회의로 이동한다. 다시 여의도역과 종로3가역,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거쳐 혜화역으로 이동한다.
#12:00 점심식사. 13:00 동료상담
점심식사를 한 후 수미 씨는 동료상담에 들어간다. 동료상담은 장애를 가진 동료상담사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장애인의 생활 전반에 대해 진행하는 상담 활동이다.
#14:00 집으로 돌아와 휴식
새벽부터 쉴 새 없이 달린 탓에 피로가 몰려왔다. 오후 2시, 집으로 이동해 약 1시간 30분 휴식을 취했다.
#17:00 퇴근길 버스 선전전
수미 씨는 퇴근길 버스 타기 선전전을 하기 위해 다시 혜화역에 왔다. 하루 두 번 선전전에 참여하는 게 힘들 법도 하지만 표정은 밝다.
그는 "다른 활동가들도 지쳐있겠지만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며 "대표님들도 힘드실 텐데 번갈아 나오신다. 같은 장애인으로서 얼마나 불편한지 알기 때문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18:12 버스 탑승 시도. 18:21 버스 탑승
전장연은 오후 6시12분부터 버스 타기를 시도했다. 수미 씨도 오후 6시21분께 버스에 탑승했다. 휠체어에 탄 활동가들이 버스에 탑승하자 일부 시민은 버스에서 내리기도 했다. 활동가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시민들도 여럿이다.
#19:20 퇴근길 선전전 종료. 20:00 장보기.
오후 7시20분 선전전이 끝났다. 이들은 마로니에 공원에서 악수와 포옹을 한 뒤 헤어졌다. 아직 수미 씨에겐 마지막 스케줄이 남아있었다.
수미 씨는 용산역 대형마트에 들러 장을 봐야 한다. 집 근처에도 대형마트가 두 개나 있지만, 혜화역에서 30분이나 걸리는 용산으로 향했다. 이 역시 '생활의 지혜'다.
"퇴근시간이기 때문에 이 방면으로 가야 시민들과 이동경로가 겹치지 않아요. 마트로 가는 길도 보도블록이 울퉁불퉁하지 않아서 휠체어가 다니기 편하고요. 마트 내부 통로도 간격이 넓어서 휠체어가 다닐 수 있어요."
수미 씨는 오후 8시 용산역 마트에 도착해 한 시간가량 장을 본 뒤 오후 10시가 돼서야 집에 도착했다.
#22:00 귀가
수미 씨는 "오늘이 특히 힘든 날"이라고 말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선전전에 참여하는 일은 일주일에 2~3번 정도다. 퇴근 심정을 물었다.
"힘들죠. 집에서 잠깐 쉬고 나왔는데도 이런 일들이 절대 쉽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힘이 될 때까지는 계속할 생각이에요. 저는 힘들어도 이렇게 지역사회에 사는 게 좋은 삶이라고 생각해요. 아직도 많은 중증장애인들이 시설 안에 살고 있는데, 장애인들이 삶을 더 주체적으로 살 수 있게 지역사회 안에 장애인 서비스 지원체계가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중증장애인 당사자로서 열심히 투쟁할 거예요."
sohyun@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