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장혜승 기자] 질끈 묶은 머리에 산발이 돼 삐져나온 머리카락 한 올. 입은 웃고 있지만 어딘지 해탈한 표정까지.
인스타그램 팔로워 1만5000명을 자랑하는 공무원계의 '스타' 소시민J(44)의 인기 비결은 지독한 하이퍼리얼리즘이다. 서울 한 자치구의 민원 창구에서 일하는 본인의 모습을 의인화한 캐릭터만으로도 시선을 잡아끄는데 악성 민원인들이 꼭 들고 다니는 서류봉투까지 묘사할 정도로 만화 한 컷 한 컷에 담긴 디테일에 반응은 폭발적이다.
'공무원 사회를 취재하러 위장잠입한 작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정도다. '그냥 어떻게든, 마구잡이로, 머리를 쥐어뜯고 좌충우돌 눈물을 흩뿌리면서' 민원을 처리하는 그의 일상에 공무원 독자들은 공감을, 공무원이 아닌 독자들은 격려를 보낸다.
지난 5일 저녁 서울 광화문 인근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 내내 본인이 소심하다고 강조했다. 인스타그램 계정명인 '소시민J'도 소상인, 하급 공무원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인 '소시민'에 소심한 사람(소심인)이란 뜻을 합쳐 지은 이름이다.
민원 창구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보람있던 경험으로 돌아가신 부친과 민원인 사이의 혈연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서류를 찾아준 사례를 꼽았다. 그러면서 "다음날 직원 모두가 나눠먹을 수 있을 정도로 간식을 잔뜩 주셔서 그런 건 아니다"고 유쾌하게 덧붙였다.
가장 힘들었던 경험으로는 악성 민원인 중에 끝판왕급인 민원인을 응대했던 일을 들었다.
그는 "그 분 생각만 해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길에서 닮은 사람만 봐도 놀랄 정도로 트라우마가 심했다"며 "그런데 만화를 그리고 나서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고 대신 화내주시고 나서는 뭔가 신기하게 '그런 분이 있었지' 하면서 가볍게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인스타툰을 그리는 뜻밖의 순기능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웃었다.
가늘고 길게 살고 싶어서 2011년 93대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이 됐지만 그가 연재한 인스타툰을 모아서 낸 책 제목처럼 '하루도 쉬운 날'은 없었다고 한다.
신분증을 민원 창구로 던지며 욕설을 퍼붓는 민원인은 악성 민원인 축에도 못 든다. 비나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수방대기 2단계 발령 때문에 퇴근까지도 물 건너 간다. 선거 업무에 차출되는 날에는 새벽 3시에 기상해 선거 다음 날까지 밤을 꼬박 새며 개표 업무를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일상을 버텨내는 단단함은 어디서 나왔을까.
소시민J는 "만화를 그리는 소시민J로서 공무원 독자들이 만화를 보고 하이퍼리얼리즘이라며 즐거워할 때, 독자들이 공무원 이런 일까지 하는 줄 몰랐다고 고생이 많다고 하면서 공무원 놀고먹는다는 인식을 바꾸는데 제가 아주아주 약간이라도 기여하는 것 같은 반응을 보여주실 때 많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또 "최근에는 너무 고생한다는 인식이 퍼져서 공무원 인기가 많이 떨어져서 어떡하냐고 하시는 분도 있는데, 인기가 떨어지면 처우 개선이 될 수도 있는 거고 현실이 알려지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다시 태어나도 공무원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한 번 해봤으니까 다른 걸 또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혹시 정년 못 채우고 그만두게 되면 구청 앞에서 떡집이나 꽃집을 하고 싶다. 공무원이 1년에 한번 승진하는 게 최대 이벤트라 인사나는 날에 화분이며 떡이 엄청 오가는데 그거 보고 장사를 하려면 구청 앞에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그의 인스타툰을 볼 수 있을지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를 남겼다.
"처음 신규 때는 1년도 못 다닐 것 같았는데 지금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어디까지 할 수 있나 터벅터벅 가봐야죠. (손가락으로 길을 그리며) 꼬불꼬불 이러고 있지만 어쨌든 가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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