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소현 기자] "삶의 여유가 없다 보니 독서와 멀어졌어요. 시간이 있어도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재밌는 콘텐츠를 봐요."
직장인 양모(27) 씨는 올해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양씨는 "독서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여가시간이 생기면 영상콘텐츠를 즐겨본다"고 말했다.
9월은 독서문화진흥법이 정한 '독서의 달'이다. 국민의 독서 의욕을 고취하는 등 독서문화 진흥에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지정됐다.
'독서의 달'이 무색하게 양씨와 같이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이 많다.
지난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만 19세 이상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율(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중 한 가지 이상 읽거나 들은 비율)'은 47.5%였다. 성인 두 명 중 한 명은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의미다.
연간 종합 독서량도 4.5권에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속한다.
조사에 참여한 주선미 한국출판연구소 연구원은 "스마트폰 때문에 독서를 하지 않는다"며 "군부대 인근 서점에 방문했는데 군인들에게 휴대전화가 보급된 후부터 책 판매량이 줄었다고 했다. 청년들의 경우에는 입시나 취업, 아르바이트 때문에 책을 읽을 여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성인들은 책을 읽지 않은 이유로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26.5%), '다른 매체·콘텐츠 이용'(26.2%) 등을 꼽았다.
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연간 종합 독서율은 91.4%였으나 종합 독서량은 34.4권이었다. 이는 지난 2019년보다 0.7%포인트, 6.6권 감소한 수치다.
정윤희 책문화네트워크 대표는 "청소년 독서율이 줄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아이들이 미래세대가 되는데, (책을 읽지 않으면) 국가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영상매체가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도 독서는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주선미 연구원은 "한국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독서율이 낮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며 "독서는 곤란한 일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해보지 않은 경험을 하게 함으로써 공감능력도 기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독서는 국민의 기본적 '권리'라는 의견도 있다. 정윤희 대표는 "좋은 책을 읽어 좋은 정보를 습득한 사람일수록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게 된다"며 "국가가 독서문화진흥법을 제정해 모든 국민이 좋은 독서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독서가 권리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독서 정책 예산 불충분…"정부 역할 필요"
최근 정부는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과 관련된 예산을 삭감했다. 2022·2023년도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정책관 예산 집행계획에 따르면 지난해 예산은 약 62억원이 편성돼 약 61억원이 집행됐으나 올해는 약 59억이 편성됐다.
문체부 관계자는 "대부분 병영독서활성화 지원 분야에서 줄었다"며 "병역 인구가 줄어드는 등 예산 수요자가 줄어 자연스럽게 예산이 감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장은 "독서정책에 충분한 예산이 편성되고 있지는 않다"며 "세계적으로 스마트 미디어 시대가 됐지만 한국은 독서율이 특히 낮다. 책 읽는 환경을 만들 사회적 동력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백 소장은 단발성 프로그램보다는 자연스럽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프로그램 몇 개를 만든다고 국민 독서율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부 차원에서 독서진흥 정책을 담당하는 팀을 만들어 사회문화적으로 책 읽는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독서시장'을 만들어 국민에게 1년에 책 한 권을 살 수 있는 쿠폰 등을 지급해 독서단절 현상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윤희 대표도 "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공공도서관과 작은도서관 등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초·중·고 도서관의 경우 사서 선생님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사서 선생님의 지도하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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