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의종 기자] 흉기 난동 사건이 끊이지 않자 정부가 현장 경찰에 '저위험 권총'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38구경 리볼버 권총보다 높은 활용도를 기대할 수는 있으나 정당한 공무집행에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시민단체는 근본 대책이 아니라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9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최근 묻지마 범죄에 근본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경찰 조직을 철저하게 치안 중심으로 구조 개편하겠다"며 "모든 현장 경찰에 저위험 권총을 보급하고 101개 기동대에 흉기 대응 장비를 신규 지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위험 권총(스마트 권총)은 38구경 권총보다 가벼운 515g으로 위력은 10분의 1수준이다. 탄두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사람이 맞으면 살 속 5~6cm 깊이로 박힌다. 위력으로 보면 테이저건과 38구경 권총의 중간이다. 다만 목덜미나 안구 등 예민한 부위에 맞으면 위험하다.
이상동기 범죄(묻지마 범죄) 등이 연이어 터져 경찰청이 지난 4일부터 특별치안활동을 벌이고 있으나, 흉기 난동 사건과 살인예고 글 사건 등이 좀처럼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경찰 '조직 개편'을 비롯해 구체적인 현장 장비까지 개선하겠다고 입장을 낸 셈이다.
전문가들은 장비 개선뿐만 아니라 법적 제도가 뒷받침해야 한다고 본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정당한 공무집행에 면책성을 부여한 근거가 필요하다. 사법부가 공무집행에 합법성을 부여하는 판례가 있어야 현장에서 당당하게 공무를 집행할 것"이라고 봤다.
실제 한 경찰 간부는 "장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저위험 권총도 상부에 맞으면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직무집행 과정에 제한이 많은데 면책 등이 제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비 도입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면책 등에 판례가 적립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경찰관의 정당한 직무집행에 면책을 강화하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과 국가배상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해당 법안은 형의 감면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 범죄를 늘리고, 손해배상 청구 대상을 국가로 단일화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지난해 2월 면책 규정을 담은 경찰관 직무집행법이 시행됐으나 장비 개선에 발맞춰 면책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 범죄를 늘린다. 소송도 경찰관 개인이 대응해 어려움이 많았으나 국가가 나서는 것이 눈에 띈다. 다만 형사책임 감면 조항 신설 당시처럼 시민사회에서는 우려하고 있다.
시민단체는 현장 경찰 형사책임감면과 물리력의 적극적인 행사가 범죄를 예방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반대한다. 참여연대는 지난 30일 논평을 내고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근본적 대책이나 사회적 논의 없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듯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부에서는 장비 문제가 아니라고 비판한다.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훈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총기 사용 빈도를 보면 1년에 5~6번"이라며 "장비 탓만 하고 면책 규정을 언급하는데, 내부에서 총기를 '잘' 쓸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중장기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당장 장비를 개선한다고 해서 무차별 범죄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사회적 외톨이를 조기에 파악해 맞춤형 대응을 하는 등 중장기적인 경제·사회적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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