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시형 인턴기자]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의 '비자금 창구'로 활용됐다는 의혹을 받는 조합에 등재된 김 전 회장의 지인이 "조합의 이름도 몰랐고 조합에 가입된 사실도 몰랐다"고 법정 증언했다.
수원지법 형사11부(신진우 부장판사)는 18일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김 전 회장의 11차 공판을 열었다.
이날 공판에는 김 전 회장이 실소유한 '프라이빗1호조합'의 조합원으로 등재된 김 전 회장의 지인 A씨가 출석했다. 조합원 명의 계약건이 등재된 이사회 의사록 명단에 오른 전 쌍방울그룹 사외이사 B씨도 출석했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A씨를 비롯한 지인 5명의 이름으로 이른바 '페이퍼 조합'을 만들어 자신의 비자금 창구로 활용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검찰이 제시한 2020년 1월 금전소비대차계약서에는 쌍방울에서 조합원 5명에게 단기대여금 명목으로 각 6억 원씩 총 30억 원을 연 8%의 이율로 31일간 대여해주는 내용이 담겼다. 대여 담보로 조합원 한 명당 쌍방울 계열사인 나노스 주식 31만 주를 제공하기로 설정됐으나 실제로 나노스 주식은 담보로 제공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프라이빗1호조합을 만들어 쌍방울에서 30억 원을 불법 대여한 후 빼돌려 20억 원은 나노스의 전환사채를 매수하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 10억 원은 조합원에게 수표로 출금받은 후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고 보고 있다.
쌍방울에서 6억 원을 입금받은 A씨는 김 전 회장의 '금고지기'로 알려진 전 재경총괄본부장 김모 씨에게 입금 전 '자금 문제 때문에 도움을 요청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A씨는 "이후 김씨가 다시 돈을 돌려달라고 해서 4억 2000여만원은 조합 계좌로 입금, 나머지 1억 7000여만원은 수표로 출금해서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A씨는 조합원 등재 경위를 놓고 "제가 조합원인 줄도 몰랐다"며 "김씨가 임의로 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계약서에 도장이 찍힌 것도 "도장을 건네받은 김씨가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합원 가입 출자금을 낸 적도 없다고 밝혔다. 프라이빗1호조합의 계약 조항에 따르면 1좌 이상의 출자금을 납입해야만 조합원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A씨는 입금받은 6억 원의 출처도 "김 전 회장의 가족인 김씨의 요청이니 김 전 회장의 요구로 생각해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고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차명 거래에 사용됐다고 짐작하지도 못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사외이사였던 B씨는 대여 내용이 담긴 이사회 안건에 대해 "전혀 모르고 기억이 없다"며 "계열사 간 자금 대여도 아니고 회사가 개인에게 30억 원이나 되는 거액을 대여해준다는 이례적인 내용이 이사회 안건으로 올라왔다면 이상해서 기억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사회 의사록에 자신의 도장이 찍힌 것도 "쌍방울에서 이사 도장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 찍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검찰은 "(쌍방울이) 누군가에게 6억 원을 빌려준다면 그가 누구인지, 왜 빌려주는 것인지는 기본적인 의문이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대여건이 이사회 안건에 상정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의심했다. 검찰은 "대여건이 이사회 안건에 있었더라도 안건 그대로 통과시켜주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해 기억나지 않는 것 아닌가"라고 추궁했다.
반면 김 전 회장의 변호인은 "B씨가 사외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이사회 안건에 한 번도 반대 의견을 낸 적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쌍방울에서 굳이 B씨에게 (직접) 동의를 얻는 걸 생략하고 허위로 (날인)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은 2019~2021년 쌍방울그룹 임직원 명의로 세운 비상장회사(페이퍼컴퍼니) 5곳 자금 약 538억 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지난 2월 구속 기소됐다.
김 전 회장 등에 대한 다음 공판은 25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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